2학년 반 민유경입니다.
제가 5살 때 엄마 아빠는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엄마와 전 할아버지 댁에서 살게 되었고 엄마는 혼자서 저를 키워야한다는 압박감에 우울 증세를 보이며 저를 돌보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엄마는 어려서부터 믿었던 하나님은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5월 어느 날 할머니께 유서한 장을 써놓고는 집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때 엄마가 죽으러 가신 사실은 모르고 있었지만 엄마가 저의 곁을 떠날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어버이날이라고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주셨고 저는 음성 멧세지에 엄마가 어디 있든지 잘 살라고 남겼다고 하십니다. 그 멧세지를 들으신 엄마는 어린 아이가 엄마조차 찾지 못하는게 너무 가슴 아프셔서 죽기를 포기하시고 서울로 올라와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엄마친구가 엄마이름으로 많은 돈을 빌리고는 도망 가버리는 사건이 오게 되었습니다.
너무 무서운 사람들이 매일 전화로 저와 이모들을 죽인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엄마와 저는 전라도 오수라는 곳으로 몰래 내려가게 되었고 그곳에 둥지 가든 이라는 식당에서 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놀 장난감도 없던 저는 비와 눈을 맞아가며 그 추운 겨울에 저수지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야 했고 식당이 식사 때가 가장 바쁜 시간이라 늘 밥도 제때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저에게 서서히 앞머리가 빠지며 원형탈모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심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머리가 빠지는 것이라고 그냥두면 마음에 병이 깊어져 치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그 길로 엄마는 저를 데리고 다시 할아버지 댁으로 올라오셨습니다. 머리는 다시 났지만 저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며 어린이집을 가서도 엄마를 옆방에 두고 계속 확인하면서 엄마와 떨어지지 못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건 가운데 엄마는 믿음을 다시 회복하셨고 저와 교회도 나가고 기도하며 저는 점점 밝고 건강해졌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재혼을 하셨습니다. 새 아빠는 그때 초혼이셨고 서울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이셔서 집에서의 기대가 엄청났고 그래서 반대가 너무 극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빠의 끝없는 설득으로 결국 엄마의 이혼과 저의 존재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서 결혼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혼과 저를 숨기고 결혼한 엄마는 너무 힘드셨는지 김양재 목사님이 계신 우리들 교회로 옮기자고 하셨고 그때부터 저희 식구들은 큐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명절이면 엄마 아빠와 시골에 내려가지 못하고 외가 집으로 가야합니다.
언제 친할머니가 집에 오실지 불안해하며 지내야 합니다. 또 저에 대해 사실을 말씀드렸을 때 두 분이 충격으로 돌아가시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이 땅에서 사명이 끝나서 돌아가시는 것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저에겐 또 다른 고난입니다. 아빠가 너무 무섭고 늘 지적하고 가르치고 나만 보면 화를 내시는 것 같아 친아빠라도 저러실까 하는 생각도하고 엄마와 둘이 살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딱 맞는 아빠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원망이 돼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주일 말씀에 내 곁에서 수고하는 사람을 통해 내가 모르는 나의 죄를 보게 하시려고 허락하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어떤 부분이 똑같다는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좋을대로 화내고 웃고 하시는 모습이 나와 똑같은 것을 알게 되었고 아빠가 화를 내시는 것처럼 보였던 부분이 바로 상처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빠가 조금씩 이해되었습니다.
늘 지적하시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니 아빠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로 적용을 하니 아빠의 모든 지적들이 섭섭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큐티를 하며 나의 죄를 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난 후 아빠에게 친아빠보다 저를 더 잘 키워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그 욕심을 내려놓기를 적용하시겠다고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관계 속에서 편안한가 싶을 때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같은 반이던 그 아이는 학교에서 제 욕을 하면서 아침엔 학교가자고 집에 오고 방과 후엔 같이 가자고 기다리고 놀자고 집으로 오는 바람에 들키지 않으려고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침에 찾아오면 아침 안 먹었다고 집에서 저와 밥도 먹고 학교가선 제 욕을 하고 저녁도 우리 집에서 먹고 갈 때는 화가 나서 학교를 그만두고 이사를 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때도 큐티를 하고 있었던 저는 그 아이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동안 왕따를 당하면서 저는 집으로 돌아와 큐티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때 말씀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서 학교 가기 싫다고 울었던 그 날 본문이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 지고 혼자 올라가시는 것을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혼자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외로움과 창피스러움, 아이들에 대한 공포를 제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왕따 당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서서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적극적으로 그 아이와 놀아줄 수 없는 두려움이 있지만 조금은 당하는 아이의 마음이 체휼되어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웃어줄 수는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또다시 기뻐할 수도 그렇다고 슬퍼할 수 없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바로 엄마에게 동생을 허락하신 사건입니다. 가장 싫은 것은 저와 성이 다른 동생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또 엄마가 당뇨로 많이 아프셔서 하루에 네 번씩 주사를 맞고 계시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면 창피해서 어떻하지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날마다 큐티를 하고 나를 돌아보아도 아직도 새 아빠를 저에게 주시고 성이 다른 동생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해 100%옳으심이 되지 않는 저의 모습과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변하지 않고 적용 못하는 저를 회개합니다.
앞으로 어떤 사건이 또 올지 모르지만 이제 그 어떤 사건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또 저보다 더 힘든 친구들을 볼 때 많은 위로도 받습니다.
요즘 제자훈련을 하며 목사님이 저에게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은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늘 울고 나눌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