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5월 4일 서울삼성제일병원에서 나는 몸에 성한데 없이 태어났다.
엄마의 2번의 유산 뒤로 태어난 아이라 엄마아빠에겐 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태어난 지 22개월 때부터 몸이 너무 가려웠고 긁으면 피가 나고 상처가나면 다시 뜯고 피가 나고 하루 24시간 동안 몸을 안 긁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잘 땐 하도 긁어서 엄마는 잠을 못 이루셨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아토피를 가지게 된 이유가 미래의 나를 위해서도 일수도 있지만, 아빠 때문 인 듯 도 했다. 내 아토피가 아니면 아빠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었을 것도 같고......... 아빠는 웅진식품 대리점 사장님이셨다. 나도 어렸을 땐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다. 그땐 내게 고난이라고는 잘 찾아볼 것도 없었다. 그렇게 풍족하게 살았을 땐 아빠는 대리점 직원 분들과 술 마시고 담배피고 맨날 고스톱 치면서 엄마한테는 일하느라 늦을 것 같다면서 먼저 자라고 거짓말을 하셨다.
우리가족은 옛날 전부터 큐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책은 가지고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유일하게 엄마는 지금의 김양재 목사님이 하셨던 큐티모임에 나가셔서 큐티를 하셨다. 내 기억 속으로는 잠깐인 듯 했다. 엄마가 김양재집사님 큐티모임에 같이 가자고 아빠한테 말하였으나 몇몇은 억지로 따라가셨지만, 결국 포기하셨고 말씀을 몰랐던 우리가족은 당연히 큰 고난이 찾아왔다. 아빠 대리점이 망하였고, 내아토피가 급격히 심해졌다.
우리는 집이 경매로 팔려 지금의 집으로 왔다. 대리점이 망하고 아빠는 평안유통을 하셨고, 새벽마다 회사 출근, 퇴근 버스 운행을 하셨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우린 이사 오면서 교회도 바꿨는데 그 교회 6년은 다닌 것 같은데 한 4년 동안은 억지로 다닌 듯 했다. 2005년에 엄마가 임신하시면서 애기를 낳고 엄마는 그 교회에 나가지 않고 아빠는 그 교회에 얼굴만 보이고 찬영이, 신영이만 데리고 우리들 교회로 나가셨다. 난 당연히 눈초리를 받았다. 아빠, 엄마는 그 교회에서 많이 알고 있어서 금방 안보이셨나보다. 그래서 나를 따갑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나도 가족을 따라 우리들 교회로 나왔다. 우리가족이 모두 없어진 걸 안 그 교회에서 사모님, 장로님, 집사님, 목사님들이 총 출동을 하셔서 우리 집에 찾아오시긴 했지만, 잘 넘어갔고 우리들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우리들 교회를 다니기 전 3년 전부터 꾸준히 말씀을 보신 아빠는 금방 적응을 하셨다. 물론 안한 나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말씀을 꾸준히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적용도 힘들고 금방 변화가 되는 게 아니라 더 힘든 것 같았다. 요즘 말씀을 안 보는데 다시 아토피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라고 경고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고난을 주시면서 말씀 보게 해주시는, 우리가족을 우리들 교회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