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주일예배
축복한지라 [창세기 32:27-26]
최근 10년간 84만명이 개명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 개명신청 사례를 보면 한남자, 정필통, 오징어, 최활활, 유령, 고양이, 강아지, 권태기, 김칫국, 변기통, 강남제비, 김목석, 여드름, 수고해, 개구리, 오늘도, 김골골, 신난다, 복돼지, 임신중, 피해자, 어머나, 한주먹, 여기나, 마수리, 섭섭이 그런데 옛날에는 섭섭이, 갓난이 이런 이름을 지을 적에 귀한 집 아들 딸을 이름은 일부로 개똥이 이렇게 천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출생신고한 이름을 기준으로 1983년을 기준으로 가장 인기 있었던 이름은 남자는 영수, 여자는 순자입니다. 지금 2000년대에 들어서는 남자는 지원, 여자는 현서 이렇게 성별이 구별이 힘든 이름이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거에는 촌스럽워서 이름을 바꿨는데 최근에는 성명학적 이유에서는 경제적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이름을 개명을 합니다. 성명학을 하신 분이 자기 이름이 조실부모하고 단명할 이름이라고 해서 이름을 바꿉니다. 개명 신청하는 이유가 장수하고 잘사는 이 땅에서 축복받기 위해 개명을 합니다. 오늘 주님이 주신 축복의 이름은 뭘까? 그것을 보겠습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고 축복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축복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겠습니다.
첫째,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새 가치관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27절) 네 이름이 뭣이냐? 야곱이니이다.’ 야곱은 ‘속이는자’, ‘발뒤꿈치를 잡는자’라는 뜻입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 전혀 친척도 아닌 사람에게 ‘야곱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것은 대단한 야곱의 발전입니다. 이것은 과거를 인정했다고 봅니다. 이름을 밝히는 것은 죄의 고백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형을 속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스스로 인정합니다. ‘(27장 36절)야곱 그가 나를 속이니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팥죽으로 장자권을 속이고 털을 붙여서 형의 축복을 받아먹어 두 번이나 속였다고 에서가 말했을 때 그 때 가만히 있었는데 오늘 자기 자신 스스로 ‘저는 야곱이예요.’라고 대답하게 하셨습니다. ‘여자좋아하는 간사한 자예요. 거짓말 쟁이예요. 늘 이겨먹는 자예요.’라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축복을 주실려고 하는데 이름을 물으십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기의 과거를 고백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환도뼈가 위골되고 하나님의 천사를 붙잡았습니다. 죄를 회개했지만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입으로 시인하는게 너무 필요합니다. 우리들교회는 공동체 고백입니다. 고백이 필요합니다. 지난주에 무덤까지 가지고 갈 혼전 낙태를 오픈한 자매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교회 다니는 엄마에게만은 얘기를 못했다고 합니다. 시기마다 내 인생의 문제가 각각 다르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이번에 엄마에게 무릎꿇고 오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자신의 환도뼈는 엄마’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우시면서 ‘그동안 얼마나 참느라 힘들었냐’고 얘기하시며 ‘공동체에 잘 붙어가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목원 때 오픈하면 목자가 되지만 목자때 오픈하면 치리한다고 해서 목자되기 전에 이렇게 오픈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픈을 아무나 다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목장에서 믿음의 분량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오픈들 했다가 경치지 마시고 때에 따라서 양육을 받고 내가 얘기하는게 하나도 챙피하지 않을 때 고백을 해야합니다. 고백이라는 게 놀라운 능력이 있어서 죄가 힘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더니 상을 주십니다. ‘(28절)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요.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제부터는 히브리인에게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부름받는 자에게 특별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고 이끌고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다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끊임없는 시름가운데 결국은 고백을 하는 게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얘기라고 고백을 못합니다. 사람을 의식합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이 야곱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을 귀히 여기셔서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우리는 불치병에 걸리고 부도가 났는데도 진심으로 내 죄 때문이라고 자신을 보면 죄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자기 죄를 못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가치관이 깨지는 것입니다.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게 되고, 부끄럽던 것이 부끄럽지 않게됩니다. ‘남의 나라 남의 집에서 눈치보면서 살아가는 도망자가 아니다.’ 내가 나의 죄를 보고가면 하나님께서 후대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싸웠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같이 싸워주십니다. 우리가 힘든 것은 옳고 그름을 나 혼자 생각하기 때문에 힘듭니다. 어떤 죄도 하나님께 내어놓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십니다. 이 싸움은 야곱이 발버둥처서 이긴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께 반항해서 이룬 게 아니라 항복해서 이룬 것입니다.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공격하기도 하시지만 늘 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싸움을 걸어오시고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환도뼈를 부러뜨리기도 하지만 배를 육지에서 만들지만 바다에 띄어보는 시험을 통해 망망 바다위에 한량없이 잘가라고 바다에 띄어보라고 하는 실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험을 못참습니다. 반드시 바닷가에 집어넣는 실전이 필요합니다. 이론으로 성경공부 아무리 해도 신학자는 못하고 잘된 사람의 경우를 연구한다고 하는 말이있습니다. 연구만 해서는 안되고 실전을 살아봐야 합니다. 참으로 내 성실하던 남편이 하루 아침에 간 것은 환도뼈가 위골된 사건입니다. 내 남편이 암에 걸린 것 또한 건강을 제일로 치던 남편의 환도뼈가 위골된 사건입니다. 나에게 가장 능력은 돈 잘 버는 남편이기에 환도뼈가 위골되고 죄인에서 성도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저에게 시기마다 또 다시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나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하나님이 변장해서 찾아온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로 십자가의 축복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새로운 가치관으로 축복하셨습니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가는 너무 세상적으로 보기에 저주의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됩니다. 남편도 이스라엘이 되어 천국가고 저도 조금씩 보고가라고 하십니다.
둘째, 생명이 보존되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29절)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아직도 잘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물어서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씩 겪으면서 알게됩니다. 너무나 거룩한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게 됩니다. 물어서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에 대해서 어렸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베드로도 ‘하나님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 했지만 닭울기 전에 세 번 부인했습니다. 뱃속에서 있다가 점점 가정, 사회, 지구, 은하계를 알게 됩니다. 별 하나를 연구했더니 은하계가 몇 개가 있다고 합니다. 맨처음 안 것은 엄청 초라한 것입니다. 별 하나하고 평생을 보내는데 셀 수 없는 별을 보고 크리스쳔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야곱이 물었기에 아직도 야곱이 된 게 아닙니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30절)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했지만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니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거룩한 사람과 살면 생명이 보존될 정도로 힘든 게 있습니다. 영적으로 큐티 잘하는 사람에게 숨이 안쉬어 지는 게 있습니다. 우리 아들딸이 시집장가 간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입니다. 갔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저만 보면 숨이 안쉬어지기 때문에 큐티하라고 할까봐 사위, 며느리는 소개 안시켜줍니다.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좋다 좋다 하면서도 싫은 게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곁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백정 박성춘 장로가 술먹고 죽을 병에 걸렸는데 고종의 의인인 엘비슨 선교사가 사람취급도 못 받던 백정에게 임금님의 몸을 만지던 손으로 백정의 몸을 만져준 사건으로 그 사람은 영육간의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소리지르고 술먹고 난리쳤는데 엘비스 선교사가 만져주어 야곱이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감히 임금님을 만지던 사람이 백정을 만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엘비스 선교사 파워가 막강 파워가 되어 죽지 않고 살아서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인권운동가로 탈바꿈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기 전까지 야곱의 삶은 언제나 이해타산적이고 승리만을 갈망했습니다. 언제나 1인자가 될려고 했던 야곱은 경쟁사회에서 언제나 살아남을려고 했습니다. 달라스 윌라스의 ‘하나님의 묘락’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은 너무 평범한 사람으로 30년을 사셨습니다. 아버지 요셉이 죽은 후에는 어머니를 도와 남은 가족을 부야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시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요? 청소, 교사, 의사, 회사원, 컴퓨터 수리공 등 보통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보통의 상태를 존재의 밑바닥으로부터 항거합니다. 보통을 너무 싫어합니다. 단순히 저 많은 것들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은 죽음과도 같이 여깁니다. 보통사람과 똑같다고 하면 다 못견디고 죽습니다. 어린꼬마에서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기억에 생각속에 조금이라도 남고싶어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인생이지 자기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거룩한 나라고 왕같은 제사장인 중요한 존재인데 자기중심적인 것과는 다릅니다. Significance하고 egoism은 다릅니다. 중요함과 자기중심성은 다릅니다. 자신이 정말 중요한 존재인가하는 병적인 자기 집착이 자기중심성입니다. 나는 언제나 일류여야만 한다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일류를 휩쓰는 병이 자기 중심병입니다. 보통이라는 것을 참을 수 없고 존재의 밑바닥에서 항거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 중요한 존재로 지음받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중요한 존재가 되도록 하나님은 각자를 다 특별한 상황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각자 환경에 부자여도 가난해도 바람을 펴도 안펴도 나만이 속한 방식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함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중요성의 갈망.. 우리가 누구인가? 왜 여기있는가?에 대한 갈망으로 어떤 이유로도 자살하면 안된다. 자살하는 사람이 인생의 멘토가 되면 안된다. 그것은 Egoism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중요한 존재입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내가 중요한 존재인 것을 깨달으니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어 새 이름으로 살게 되어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니 날마다 나눠도 또 길어낼 나눔이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늘 다른 얘기를 또 해주고 또 해주고 또 해줄 수 있게 하십니다. 자기 중심적인 야곱이 나같은 사람도 중요하게 생각해주시는 것을 환도뼈가 부러지고 나서 깨닫게 됩니다. 나는 왕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택함받은 중요한 존재인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깨달을 수 있게됩니다.
셋째, 해가 돋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31절)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박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하나님은 환도뼈가 부러져도 그 부분을 거룩하게 여기십니다. 그 때부터 해가 돋게 됩니다. 돈이 많아고 모든 것을 가졌어도 심히 두렵고 답답했는데 이제는 다리를 절면서 담대하게 나가게 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는 순간이 되게 하십니다. 죄는 용서받아도 죄의 흔적의 결과는 있지만 그 결과는 우리를 겸손케 합니다. 죄의 흔적이 남는 것을 생각하고 죄를 짓지 말하야 하겠지만 인간이 그러기가 힘듭니다. 새가족 집사집의 첩에게서 아들이 나왔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면 조강지처와 살게 됩니다. 젊고 아들까지 낳았는데도 조강지처에게 돌아왔습니다. 흔적이 안남으면 좋겠는데 흔적이 남았습니다. 흔적이 없었으면 간증도 안합니다. 흔적이 남는 게 축복입니다. 흔적이 100번을 펴도 안남아서 잘난 척들을 합니다. 하나님방법대로 모든 것을 끊고 가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날마다 흔적을 안남길려고 마음대로 낙태를 합니다. 죄의 흔적은 우리를 겹손케합니다. 벧엘에서 어린아이 같은 서원으로 십일조를 약속했지만 사람은 굽이굽이 바뀝니다. 환도뼈가 이골되고도 또 또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완전히 버릴 수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하나님이 저를 치지 않으면 저는 끝까지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32절)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야곱과 후손은 이제는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이제는 힘줄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자 때문에 주님만났는데 또 하면 안됩니다. 힘줄의 ‘ㅎ’자도 보면 안됩니다. 보지도 않고 해서도 안됩니다. 주식하다 망했는데 또 주식하고 또 주식하면 하나님이 완전히 버릴 수도 있다. 존 파이프 목사는 여러 자녀를 키웠지만 자녀들이 세상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합니다. ‘(31절)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박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살고자 하는자는 죽고 죽고자하는 자는 삽니다. 나를 완전히 깨뜨리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를 치지 않으면 저는 끝까지 남의 발뒷굽치나 잡는 일을 할 겁니다. 야곱이 쩔뚝쩔뚝 걸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나님이 하신 일 중에서 내 환도뼈 친 일은 가장 잘 하신 일입니다. 이게 설교이고 QT입니다. ‘하나님 좋으시겠습니다. 후련하시겠습니다.’하겠지만 ‘너무 잘하셨다’고 행복하게 다리를 절며 걸어갑니다. 인생 살아보니 별 인생이 없습니다. 오늘 회개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부도덕하고 교활하고 사기꾼 같아도 회개하면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서 똑같이 희망의 해가 누구에게나 돋는다. 내가 커튼을 닫아놓고 있기 때문에 자살하고 원망하고 감사가 없고 누리지를 못합니다. 낭만적인 사랑의 신화는 100% 거짓말이라고 스캇팩 박사가 얘기했듯이 커튼을 열면 똑같이 해의 비췸을 받는 건 자격과 공로가 없다. 생명에 직결되는 해는 다 꽁짜이다. 뭘 그렇게 생색을 내고 원망하면서 죽겠다고 난리를 칩니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맨 마지막 장면에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기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한테 해를 받아서 반사채가 되어 내가 비춰줘야합니다. 우리의 나눔에 회사비 33억이 제 이름으로 연대 보증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암흑 그 자체였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습니다. 최고의 학벌로 취직할 생각도 했지만 이런 상태의 사람을 아무도 채용하지 않는 암흑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못되게 굴고 바람피고 최고의 학력을 가지고 아내 무시했던 남편이 ‘이런 나를 지켜주는 아내가 있어 말씀과 양육을 통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람피는 게 해결되나 보다 했더니 회사에서 사건이 왔습니다. 살아온 날의 결론입니다. 단 돈 천원이라도 빌린 사람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적게는 8천원부터 많게는 12억까지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연대보증을 풀어주고 그 회사에서 감액손실 처리를 해주어 오늘 하루에 24억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내려놓는 적용을 하니 탕감받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리스트를 적을 때는 내 빚갚는 것보다 밀린 직원들 봉급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실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실거라 믿고 이제는 우선순위가 첫째가 예배요, 둘째가 가정이 되었습니다. 남편없는 나보다는 아무리 악해도 남편이 있는 게 소망이 있다. 악하고 선한건 하나님이 환도뼈 한번만 치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고 계속 씨름을 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격과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항해의 끝이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기도
내가 입으로 고백하면 새 이름, 새 가치관을 주신다고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원망을 했는데 생존하게 해주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해는 떠오릅니다. 내 항해의 끝이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하면 안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 돈을 다 뺏아가셔서 시원하십니까? 내 자식, 내 자녀, 내 남편을 가져가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러나 잘 하셨습니다. 하나님 하신 일 중에서 제일 잘 하셨습니다. 주님 정말 잘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걸음을 걸을 수 있었겠습니다.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씨름했던 저를 이렇게 살려주셔서 생존하는 축복을 주셨는데 이제 이 위골된 환도뼈를 가지고 다시는 얍복강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주여 나를 지켜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느낀점
저의 돈우상, 결혼우상이던 가치관을 바꿔주시고 자기중심성이 아닌 저의 중요성을 깨닫고 말씀을 사모하는 해가 돋는 축복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십일조가 아까운 인색한 마음이 있고 아침에 QT가 너무 어려울 때는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 아니라 스트레스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원망과 불평 가운데 있는 저를 하나님께서는 생존하게 해주셨습니다. 아직도 저의 죄가 너무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해를 공짜로 비춰주신다고 합니다. 저의 소중함을 모르고 함부로 살려고 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여전히 공교육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면 안된다고 해서 저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돈이 없고 아픈 오빠와 가난한 저희 가정의 환도뼈가 위골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길을 담대히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하나님 저를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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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나눔>
목자의 목원들과 함께하는 설교요약
개명신청은 이땅에서 잘 살고자 축복받으려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야곱은 환도뼈의 위골을 계기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새 가치관으로 축복하셨다. 속이는자였고 무덤까지 가지고 갈 과거였으나 환도뼈 사건 후에 야곱이 죄를 인정하게 되었다. 입으로 직접시인하는 고백이 필요하다. 죄 고백을 한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신다. 하나님은 공격하고 풀어주시는 것을 반복하신다. 환도뼈가 부러져서야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죄의 고백이 가능하고 새 이름으로 축복해 주신다. 결국은 나와의 싸움을 하느라 지치고 피곤하다. 끝도 없는 싸움을 하며 축복받는 삶을 살고 싶지만 하나님 외에 내가 의지하던게 무너져야 이전과 다른 업그레이드된 천국의 가치관을 주시고, 생명이 보존되는 축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속성은 비밀로 남겨진 게 있기 때문에 날마다 묻고 가야한다. 야곱이 이해타산적이고 성공지향적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무 평범한 사람으로 사셨다. significance와 egoism을 헷갈려한다. 자기가 부각되지 않을 때 불안해 하는 병적인 반응이 있다. 자존감을 하나님 안에서 가져야 한다. 내가 중요한 존재인가 병적인 집착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늘 고갈되고 원망이 있다. 자기 환도뼈에 의지해서 사는 일류병은 보통의 평범한 삶을 견딜 수 없다. 그럴수록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다. 경험되어짐으로 차츰 차츰 알게된다. 알면 알수록 너무 크고 놀랍니다. 그래서 겸손하고 겸허하게 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이 나오게 된다. 하나님이 가장 밑바다가운데 있어 환도뼈가 부러져 저는 그 흔적을 거룩하게 하신다. 숨기고 감출게 아니라 밝히 드러나져서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된다.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고갈되지 않고 진정한 희망이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진다.
- 나는 희망가운데 있는지? 아니면 지치고 고갈되는 힘든 가운데 있나?
* 위골정민 : 힘이들고 egoism의 절정이다. 나의 소중함을 모른다. 부러진 환도뼈가 복중의 복이고 감사하다고 고백하며 나가야 하는데 시시때때로 허무하고 못견디겠다.
* 순진은이: 소개팅한 사람이 우리교회와서 예배만 드리고 등록은 하지 않았다. 재지 않고 좋아해주니 나도 좋을 것 같다. 이번주에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옛날 남자친구에게 전화도 왔다. 하지만 관계를 끊지 못하고 나의 경제적인 문제를 아는 예전 남자친구를 보험처럼 곁에 두고 싶었는데 어제 진짜 헤어지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제 지친다'는 얘기를 듣게 하셨다. 신발을 같이 골라주었는데 서로 생색이 났다. 그리고 이별 문자를 받고 알았다고 잘 살으라고 얘기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뭐가 나의 환도뼈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소개팅한 사람과 점심을 먹다가 회사 지각을 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깨달으라고 모든 사람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셨다. 중요하고 급한 일을 분별하지 못하고 나를 좋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빠지는 모습이 있다. 어제도 보자고 했는데 너무 만나자고 하는대로 다 만나면 안될 것 같아서 오늘 교회에 같이와서 보는 걸로 했다. 새로운 교제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를 오픈하기가 두렵다. '결혼을 지켜야 하는 11가지 이유'책을 선물하고 결혼의 목적이 거룩임을 얘기했다. 하지만 그 분은 '결혼하고 자기를 때리는 남자여도 무조건 참아야 하는지?'를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도 해답은 모르겠다.
<목자처방: 겉을 보지 말고 기도하면서 나가자.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나 중심적인 자기 사랑을 뛰어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십자가 지는 삶으로 해석되게 하신다.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시고 가치관을 한걸음 한걸음씩 업그레이드 되고 지경이 넓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래야 돼'하는 율법주의가 아닌 온전히 이해하는 마음이 먼저 있으면 좋겠다. 사실 때리는 사람 맞는 사람 둘 다 불쌍하다. 그것을 뛰어넘는 죄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 별 사람이 없고 주님이 쓰시는 도구일 뿐이라고 사람에 대한 긍휼한 마음과 지경이 나만 바라보는 눈에서 점점 더 넓어진다. 단계 단계의 과정을 같이 해나가자.>
* 스팩?: 오늘 늦게 왔다. '결국에는 환도뼈가 무너져야 해결이 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환도뼈는 부모님이다. 내가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있다. 내 중심적으로만 생각하는 게 너무 힘들다. 부모님께서 선을 보라고 하셔서 선을 봤는데 너무 싫었다. 엄마는 좋다고 하시지만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엄마아빠가 원하는대로만 따라가기가 싫고 반항하고 싶었다.
* 명쾌은샘: 특별하지 못해서 관심받으려고 이상한 척했다. 하지만 관심아닌 멸시를 받고 공상만화를 좋아하면서 점점 이상해진것 같다. 외모컴플렉스가 있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고 방어하고만 싶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상처받은 얘기들이 아물어지지 않는다. 자존감이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시크주은: 회사에서 일하다 뛰쳐나간 친구와 얘기를 했다. 충동적으로 상사를 욕하고 싶고 '야곱이로소이다.'가 안나온다. 하나님이 '너는 누구냐?' 물으시면 할 말이 없고 피해의식만 꽉 차 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혈기만 냈다. 군대에 있는 2살연하의 남자친구는 불신교제인데도 그동안 좋은 꼴 나쁜 꼴 다 알기에 헤어질 생각이 안든다.
*친근지현: 오늘 교회오기가 너무 싫었다. 반복되는 정욕의 죄때문에 내가 전도한 남자친구까지 죄짓게 한다는 죄책감에 예배고 뭐고 나랑은 전혀 상관없게 느껴졌다. 분명히 나의 죄를 혼내시는 말씀을 할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고백을 통해 축복하시고 나의 가치관을 바꾸시고 생존하게 하시고 동일한 해를 비춰주신다는 말씀을 주셨다. 요즘 큐티말씀에 너무 무서워서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만 알았는데 오늘 목사님 말씀처럼 하나님은 정말 측량할 수 없으신 분이다. 죄가운데서도 예배와 공동체에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교회에서 같이 말씀듣는 남자친구의 '그래도 예배는 가'라는 말이 격려가 되어 가능했다. 신교제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은샘이가 우리들의 호를 지어주었다.
위골정민, 순진은이, 시크주은, 스팩형선, 명쾌은샘, 친근지현..
동방신기보다 멋진 우리 목장 최고얌!!ㅋㅋ
<기도제목>
* ? : 곧 엄마 생신인데 엄마, 아빠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 주은 : 자기 죄를 보고, 평일에서 하나님 생각하며 살 수 있도록
* 지현 : 남친과의 집 문제를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방법대로 해결 받을 수 있도록, 일대일 양육교사 훈련 잘 받도록
* 성은 : 사람보다 하나님을 우선시 하도록
* 은샘: 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짓을 했는데 생산적으로 시간을 아껴서 쓸 수 있도록
* 정민 : 의욕적으로 살면 좋겠다. 해서 뭐하나 싶고 기대도 안되고 용기도 없다. 하지 않고 자기를 확대하고 있다. 그림도 그리고 큐레이터도 찾아가봐야는데 전체적으로 '해서 뭐하나'하는 허무주의에 빠졌다. 늘 불만족스럽다. 뭔가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동생이 취업되면 좋겠다.
* 기혜 : 내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 유진 : 건강회복, 공부 집중해서 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