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의 족보(창36:1~8) 2010-06-20
1. 에서의 족보가 먼저 나오는 이유
창세기에는 총 10개의 계보가 나온다. 창조(2), 아담(5), 노아(6), 셈과 함과 야벳(10), 셈(11), 데라(11), 이스마엘(25), 이삭(25), 에서(36), 야곱(37)이다. 아브라함에겐 아버지 데라, 이삭에겐 이스마엘이 힘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택자인 야곱을 힘들게 한 에서의 족보가 성경에 먼저 언급된다. 이처럼 가까이 있는 자가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를 한다. 택자와 불택자의 경우에서 우리가 자유의지로 믿음을 선택하는 것도 맞고, 절대자의 택함도 맞다. 그러나 에서의 경우엔 때마다 불신을 택한 것이 야곱과는 달랐다. 에서는 그의 자유의지대로 살아서 야곱에게 장자권을 물려줄 수 밖에 없었다. 에서는 부강했지만 잠깐 언급되었다. 반면에 믿는 야곱의 얘기는 시시콜콜한 것도 하나님께 의미가 있어서 창세기25장부터 50장까지 길게 소개된다.
2. 에서의 족보는 불신 결혼의 족보이다
(2절)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더니 이방여인과 결혼하여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이 되었다. (3절)그리고 유사 그리스도인인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하는 어긋나는 순종만 했다. 성경은 불신결혼에 대해 경고(창6:2, 신7:3~4, 수23:12~13)를 하고 있다. 예수를 믿고도 전도한다면서 타협하고 싶은 것이 바로 혼인이다. 불신 결혼은 믿음의 퇴보를 가져온다. 한 사람으로 온 집안이 지옥이 되고, 멸절을 초래한다. 혼인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적인 연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과 동화되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처음엔 먹이로 위장한 올무와 덫인 불신결혼의 정체를 모르지만 한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구원과 영성의 결정적 장애가 된다. 아브라함은 불신결혼을 피하기 위해 800km가 넘는 노정의 끝에 믿는 자부를 얻었다. 라반의 계교로 야곱이 중혼한 것은 물론 잘못이지만, 에서가 자기 의지로 불신결혼을 한 것이 야곱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이 예배와 목장에 잘 참석하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알맞은 상대를 만나게 하실 것이다.
3. 에서의 족보는 자기 중심적인 족보이다
(4~6절)’자기’가 6번 나올 만큼 에서는 자기 중심적이고, 가족신화와 자아도취에 취한 사람이며 또한 부유하고 뭐든지 잘 된 인물이다. 성경은 말세의 고통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함을 말씀하고 있다(딤후3:2). 왜냐하면 모든 것을 자기가 해서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고 정욕대로 살게(롬1:24) 내어버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에서는 믿음이 없어도 아버지를 끝까지 멋있게 모시며 효자 노릇을 했다. 자신의 칼을 의지하여 창대한 가계를 이루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하였고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총명이 없어 멀리 볼 줄 몰랐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자기애, 나르시시즘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런 자기미화를 막으려면 자식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사랑 받는 존재로 대하는 가정으로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크리스천이었던 핀란드가 교육, 복지의 천국이 되었지만 그 편함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렸다. 결국 가구의 50%가 1인 가정이고 극도의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교류가 없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라가 모든 것을 다해주니 믿음이 필요가 없어 에서와 같은 결말을 맞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양육을 하면서 삶의 모범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4. 에서의 족보는 영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끝나는 족보이다
에서는 마치 세상으로 떠난 데마처럼 공동체에서 타처로 떠났다. (7절)야곱이 산전 수전을 겪고 고향 생각이 나서 돌아왔는데, 에서는 자기 발로 약속의 땅을 나갔다. 결코 면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창34:21). 하나님께서는 에서도 큰 나라를 이루신다는 약속(25:23)을 지키셨지만 에서는 이스마엘처럼 약속의 땅을 스스로 나갔다. 야곱이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에서와 같이 가지 않은 경우와 비교가 된다.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르다. 믿음의 아버지로 시작해서 육신의 세일 산에서 끝난 것은 영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끝난 것이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 같이 고난이 축복인 것이 감사하다. 군사는 모집한 자(하나님)를 기쁘게 하고, 경기의 규칙을 지키면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총명으로 앞날을 훤히 알게 하실 것이다. 결국 내 인생을 복음으로 해석 할 수 있는 것이 총명이다. 남편을 감옥에 보낸 여집사님의 나눔에서 사랑은 달콤한 낭만이 아니라 핏덩어리임을 알게 된다. 아무리 교육 천국, 복지 천국이 좋더라도 예수가 없으면 천국이 아니기에 우리는 구속사에서 평등을 누려야 한다. 헛되어 끝날 인생이 되지 않도록, 불신 결혼하는 자녀가 되지 말아야 한다.
목장나눔
신데렐라(5시 땡~) 권욱진: 어머니께서 직장을 옮기셔서 예배를 드리셨고 양육도 받으셔서 감사했다. 이전 교회의 자매를 만났는데 그때처럼 여전히 힘들어하기에 예배의 회복이 필요해 보였다. 몇 년째 불신교제 중인데 이번 기회에 이슬비와 목사님 책을 선물하려고 샀다. 그리고 가게에서 7개월 일하다가 그만 둔 여학생에게 교회를 소개했더니 오겠다고 연락을 받았다. 지난 주에 이어서 사장인 친구의 형 때문에 화가 난 상황이 벌어졌다. 친구가게라서 더 신경 써서 일하는 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왜곡하더니 친구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그만 두겠다고 친구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친구는 가족들과 상의를 하고는 형은 나오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하겠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불만제로와 사장 형의 사건 때 가게를 그만두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속 붙잡아 두시는 것 같아 고민이다.
(목자님 한마디) 욱진이가 여기서 제일 잘 사는 것 같다. 환경에 순종하다 보면 결국엔 예배인지 돈인지를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에서처럼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너무 정답을 찾으려 얽매이지는 말자.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만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박병배: 이직할 회사를 알아보며 면접을 봤다. 여러 곳 중에서 한 회사가 급여와 업무 환경 등이 좋아서 사장님과 면접을 봤는데 장로님이셨고 우리들교회를 알고 계셨다. 같이 일하게 될 팀장님과 상의해서 수련회도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앞으로 수요예배를 참석할 것이고 퇴직금 받으면 한 턱 쏠 계획이다(올레!).
(목자님 한마디) 이직 후 첫 회식에서 예수님 믿는 사람이니까 술 너무 마시지 말고 잘 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이 바뀌었는데 예배에 소홀하면 안 된다.
김수연: 진로가 잘 안 풀리니까 동생이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지 반항적으로 가족을 대했다. 그런 일로 부모님도 서로 말다툼을 하시고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면서 나도 일하면서 몸이 힘들었고 답답함도 있었다. 미국에 목사님이신 외삼촌이 사시는데 그 딸이 친척들을 만나보겠다고 한국에 와서 우리 집에서 잠시 지내고 있다. 같이 새벽예배도 드렸고 토요일엔 인사동으로 관광 안내도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목자님 한마디)가족 구원은 삶으로 보여줘야 해서 진짜 힘들다. 동생하고 관계를 잘 맺는 것이 필요하다. 형이니까 참는 게 아니라 구원 때문에 참아야 한다.
이형배: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에서이다. 예전에 상황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다른 상황과 맞물리면서 결국 엄마는 나를 도우시려고 고향에 내려가서 일을 하시고 계신다. 내가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고생을 안 하셔도 되는데, 내가 한 죄가 생각이 나고 외로워하시는 게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총명도 없어서 상황을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스스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 어리석은 오빠와는 반대로 여동생은 엄마가 처한 상황은 결코 오래있어야 할 것이 아니니까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풀려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부끄럽기만 한 내 모습이다.
양성훈: 작업하는 곡의 진행과정이 좀 아닌 것 같아서 멈춘 상태이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 같았고 회복이 먼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인정해주는 곳이 달콤해서 가고 싶은 게 마치 야곱이 헤브론을 눈 앞에 두고 거했던 것과 같았다. 인정받음이 나의 라헬이다. 이 중독을 하나님께서 끊어주셨으면 좋겠다. 나에겐 야곱과 에서의 중간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저울질하는 모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