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에서 오붓하게 나눔을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목장 오신 정윤지 언니 방가 방가 (^_^)/
우리 목장 나눔과 기도제목
정윤지 (83)
- 목장 정착 잘 할 수 있도록. 목장 오면 좋은데, 오기 까지가 너무 힘들다.
- 회사에서 상사들에게 진심으로 순종 할 수 있기를
하유신 (85)
- QT 생활화가 잘 안됨. 몸이 너무 피곤 규칙적인 생활이 힘들다. 의지가 좀 더 강해졌으면
-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유혜경 (85)
- 지체들을 통해 주시는 적용을, 삶에 잘 실천할 수 있도록
- 돈을 지혜롭게 잘 쓸 수 있도록
- 지혜 로운 인간 관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 돕는 배필 만나도록
윤희경 (82)
- 일대일 양육교사 막상 시작하니 너무 싫다. 숙제도 너무 많고 쳐다보기도 싫은 상황. 숙제 잘 하고, 양육 교사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잘 수료할 수 있게
- 이번 주에 새벽 2시에 일 끝나고, 일이 힘들다. 해야 될 일이 많지만, 실수하지 않고 지혜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잘 해나갈 수 있게.
- 내 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조급증 내지 않도록
진환 (82)
- 교회에서 받은 은혜, 회사 가면 다 잊어 버리고 나의 급한 일과 팀장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인해 시달린다, 그리고
잘 보이려고 한다. 인정받는 것 내려 놓도록.
- 마음이 너무 힘든데, 뭘 해도 즐거운 것도 싫은 것도 없다. 하기 싫은 것만 어쩔 수 없이 한다. 회사 가는 것이 즐
거웠으면 좋겠고 사는 것이 감사했으면 좋겠다.
우리를 부르시는 설교 말씀
본문 : 창세기3:8-13
제목 : 네가 어디 있느냐
간단 요약
악에 대해서 순진무구하던 아담과 하와는, 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타락의 길에 들어섰다. 타락한 사람들은,
1. 피함으로 나타난다.
2. 변명으로 나타나게 된다.
3.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타락의 현장으로 가는 것이다.
4.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5. 대안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 네가 어디 있으냐 ”
본격 적인 말씀 !
사람이 선악과를 먹기 전 까지는, 서로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라 부르며, 그렇게 서로 사랑했지만 자의식이 들
어간 다음서부터 책임 전가가 생겼다, 사회학자 아스트리트 쉬츠가, 방어적 자기 연출에 단계 모델을 소개한다. 자
신이 거짓말하고 사기 친 이야기를 할 적에 그 일을 자기가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1) 부정을 한다.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한다
2) 그 사건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며, 새로운 해석을 한다. "그들의 주장과는 다르다"
3) 나는 그 장본인이 아니라고 한다.
4) 변명 한다. " 내가 했지만 나는 옳았고, 불가피했다."
5) 통제 능력을 부인한다. "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
6) 연루를 최소화 한다. " 나는 평소에 그런 일 하지 않는다.
7) 그래도 믿지 않으면, 맨 마지막에 용서를 구한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수 있을까. 날마다 " 옳소이다" 하라는 것이 그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타락한 사람들은
1. 피함으로 나타난다.
8절, “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죄의식은 숨고, 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항상 나를 위로 하시던지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으로 찾아오신다.
이 음성을 듣고 나아가면 되는데, 나가지도 못하고 회개가 안되는 것이 문제다. 인간의 자의식이 발전하고 똑똑해
질수록, 이렇게 교묘하게 피하는 방법만 배워간다. 그래서 사람은 유혹 속에 있을 때 외로운 것이다. 성도의 가장
큰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는데, 자기가 동산 나무 아
래 피하고 숨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버렸다고 하는 그것이 바로 타락의 현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이제 하나님의 음성이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찾아오셨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며 먼저 찾아
오셨다.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지만, 아담에게 먼저 찾아 오셨다. 왜냐하면. 2장 17절에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명령은 하와에게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아담 한 사람에게만 그 명령을 주시고, 그 다음에 돕는 배필을 주셨다.
이는 맨 처음 말씀 들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되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다. 믿는 사람 중에서도
구속사의 주인공, 믿음이 더 좋은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다. 항상 “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 ” 하는 사람
이 제일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학자든 목자든 상관이 없다. 우리는 선악의 개념, 옳고 그름의 개념이 아니고 구속의 개념으로 볼때, 잘못하지 않
은 것이 없다. 그래서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그러나 아담이 이 말 듣고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함으
로 나타났다는 것은
2. 변명으로 나타나게 된다.
10절, “ 가로외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이름까지 불러주시면서 찾아 오셨는데 아직도 진정한 회개가 안된다. 내가 무슨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제일 빨리 회
복될 수 있는 비결은, 본질적인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금한 것은 선악과 먹지 말라는 것, 불신결혼 하지
말라는 것, 뇌물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가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하는 순종, 즉 순종
을 위한 순종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사랑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내적으로 분열하게 된다. 하나님과 떨어져서 우리
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게 된다.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 대화가 흥미롭고 유쾌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의 마
음이 다른 데 가 있을때는, 진정한 친밀감이 방해되고, 미적지근한 관계밖에 될 수가 없다. 순종하기 위해서 순종
하는 것은 분열을 조장한다. 그냥 하라는 주장에 따르다 보면 자기 행동에 대해서 무책임해진다. 그런 사람일수록
권위를 가진 상대, 하나님과, 부모, 상사, 배우자 등을 기쁘게 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의견
차이를 제대로 다룰 수가 없다. 항상 무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이제 의식적인 선택으로
옮겨져 가는 것이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딱 생기면 결정을 못한다. 이혼을 해야 하는지 안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 생길 때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발성과 자유함을 가져야 하는데,
3.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타락의 현장으로 가는 것이다.
11절. “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고하였느냐 내가 나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
아무도 벗었음을 보는 사람이 없는데. 피해의식이 생기고 자꾸 오버 센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내가 너더
러 먹지 말라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이렇게 정확하게 회개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데도 불구하고 대답하
기 싫은 것이다. 생각나지 않는다. 자신이 불신 결혼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하기 싫은 것이다. 하나님이 금지한 선
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서 불안과 고통,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아담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정말 이
열등감과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그 유혹에 또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고 있으니 또 유혹에 넘어간다. 회개하지
않으면 또 다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사랑을 다룬 서양 최고의 고전인 플라톤의 향연에는 사랑의 신 에로스의 혈통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에로스의 아
버지는 계략과 교활, 어머니는 빈곤과 결핍이었다. 이것을 합치면 항상 뭔가 부족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
우기 위해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것이 에로스라는 것이다, 에로스는 자기 부모를 쏙 빼닮았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사랑이 성립되려면 상대도 똑같이 결핍을 느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에로스가 날린 이 화살에 맞은 사람은
그 순간부터 결핍과 고통과 굶주림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혹자가 하는 일이다. 상대가 덫에 걸렸다고 판단
되면 은연중에 상대방의 상처를 파고들어서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뭔가 불안을 느
낄 때,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사람들을 사랑에 빠지게 하려면 우선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연애하면서 그렇게 때리고 욕하고 이러고 연애 하면서도 이것이 내가
그 덫에 빨려 들어갔기 때문에, 나는 저런 욕도 십자가로 다 승화해야되 하면서 연애한다. 저렇게 때려도 저 사람
을 구원시켜야 해. 이것이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것이다. 제정신을 가지고는 판단을 잘 못한다. 에로스 사랑은 이
불안한 상처를 교활하게 이용하고 그것의 부족을 채우고자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에게 가서
더 불쌍하게끔 느끼게 한 후, 나에게 의지하게끔 만드는 것이 에로스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이란 것이 에로스 사랑
이다. 그래서 이 동정심을 유발해서 그러면 더 그 상처를 건드려 준다.
불안한 것들을 딱 건드려 주면서 더 콕콕 찌르면 나에게로 오는 것, 이것이 바로 사단의 유혹의 기술이다. 내가 힘
들고 타락에 빠져 있을 적에 또 다른 유혹에 걸려 들어간다. 변화 되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이혼했으면, 재혼, 삼혼
을 할 적에 그 전과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재혼 삼혼이 더 힘든 것이다. 다시 재혼하려면 온전히 하나님 만
나야 한다. 진짜 이 타락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행한 나와 불행한 네가 만나면 불행한 우리밖에 안된다. 우리 모두 불행한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자가 주제
가이다. 불행한 사람끼리 의지하면 불행한 우리밖에 안된다. 성숙한 너와 내가 만났을 때 행복한 우리가 나오는 것
이다. 이 원리를 잘 알아야 된다. 그래서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가지고 이렇게 결혼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책임 전
가 밖에 하지 않는다.
4.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12절 “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지금 계속 기회를 주는데도, 언제는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라고, 2장 23절에 내 뼈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죽
을 것 같이 이러더니 에로스 사랑도 다 이렇다. 죽을 것 같이 평생을 사랑한다고 한다. 평생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 그러더니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주어서 먹었다고
한다. 하나님에게 책임 묻고, 여자에게 책임 전가한다. 여자가 주므로 먹었다는 말은 정확한 말이기에,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일수록 아주 논리적으로 따지고, 완전히 변명을 하고 그 책임을 최대한도로 낮추고 하는, 그래서 우리
는 틀린말을 안했기에 논리적이라 생각되지만 바로 이런 것이 불신앙이다. 옳고 그름만 따지는 것이 불신앙이다.
아담이 한 몸인 사랑하는 아내도 창조주 하나님도 자기의 죄를 덮게 하기 위해서 변명과 책임전가로 일관했는데,
이 세상 부부는 다 이렇게 될 수 있다. 자기의 육신의 안락을 위해서 얼마든지 아내를 팔아먹을 수 있고. 아브라함
도 육축과 은금에 사라를 팔고 가져온 적이 있다. 누구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나를 배반하고
하는 것이 대해 있어야 될 일이 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 이 땅에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완전히 선악과 따
먹고 죄악이 들어왔기 때문에 누구도 죄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계속해서 피하고 변명하
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은 나를 만드시고 나를 너무나 가장 깊이 이해하셔서
네가 어디 있으냐 물으신다.
5. 대안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 네가 어디 있으냐 ”
회개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아담에게 먼저 물으시고 하와에게 물으셨지만 뱀에게는 묻지
않으셨다. 추궁도 싹이 보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만 선악과 안 먹는 훈련 주신 이유가, 구원에는 훈련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뱀은 물을 필요조차 없는 사단의 하수인 이므로 하나님의 생령과 상관없는 짐승에게는 묻지도 않
으신다. 하나님께서 자꾸 물으시는 우리가 되길. 같이 오픈 하면 공동체에서 내 죄가 나타난다. 오고가는 나눔 속
에 보여지는 우리의 죄. 옳고 그른 것은 항상 없다. 우리는 구속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타락의 현
장에서도 자꾸 나누고 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만드셨다. 삼위의 하나님께서 나를 의논하시고, 기뻐 하시면서 만드셨기에
우리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다. 너무나 지키시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책임전가하고 별거 다 해도 하
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쉬지않고 지켜보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담이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어디 있는가 물으실 때 하나님의 낮을 피해 숨고 있는가? 두
려워하고 변명하고 있는가? 피해 의식으로 책임전가 하고 있는가? 순종을 위한 순종으로 지금 우울증에 걸렸는
가? 폭력으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를 해롭게 하는가? 타살보다 나쁜 것이 자살이다. 왜냐하면 자살은 회개할 기회
가 없기 때문이다. 타살은 회개할 기회가 있다. 우울증 정말 나쁜 것이다.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제일 나쁜 것이다.
때문에의 신앙에서, 불구하고의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리함에도 불구하고 “ 아
담에 네가 어디 있느냐 ”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대안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 찾으신 음성을 듣기만 하길.
리더십의 핵심은 경청이다. 첫째도 경청 둘째도 셋째도 경청, 그리고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해야 한
다, 그리고 감사해야 한다. 또 경청.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도 경청한다. 그러면 이 땅에
서 잡지 못할 것이 없다. 이렇게 사회에 나가고 직장에 나가고 부부관계도 모두가 성공하시는 것이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떤 환경에 있을지라도 오늘 이 음성을 듣고 나오시는 분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