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창세기 3장 14~24절
최성남
어떤 사람이 존 웨슬리 어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11명의 자녀들 중에 누구를 가장 사랑하나요? 회복되기 전까지는 아픈 아이를 가장 사랑합니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집 나간 아이를 가장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향한 하나님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벌을 주시면서도 이런 마음을 가지시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선악과를 먹은 대가로 벌을 내리셔야 하는 아픔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벌을 내리셔야만 한다. 정녕 죽으리라.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벌을 내리십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모든 사람들을 벌하시는 첫째는 저주의 벌을 내리십니다.
1. 저주의 벌을 내리신다.
14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먼저 타락을 하게 한 장본인인 뱀에게 저주를 내리신다. 하나님 자신이 저주를 내리신다. 다른데서는 제 삼자가 저주를 내리시는데 뱀에게는 저주를 내리신다. 우리가 저주라고 생각을 해도 하나님이 죄라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또 이런 모든 것의 떠나서 참 이 저주의 선고를 내리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 확실하게 저주를 내리셨다. 뱀이 왜 저주를 받았나? 이제 선악과를 먹게 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아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큰 저주인지를 알아야 한다. 결코 그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으리라. 이 말을 듣고 불신 결혼을 해도 이혼을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 망하지 아니하리라. 죽지 아니하리라 했는데, 사실 죽지 않았다. 꼭 뱀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죽지 않았잖아. 결혼해서 잘만 사네. 망하지도 않았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눈이 밝아서 본 것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신결혼을 하고 보니까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하라고 모든 것을 고쳐 주셨는데, 번지수가 달라 사실 눈이 밝아져서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족하는 자는 연자 맷돌 가지고 빠져 죽으리라고 했는데, 뱀 목사, 뱀 상담가, 뱀 지도자들이 가장 큰 벌을 받는 것이다. 상담 잘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연자 맷돌로 빠져 죽어야 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상담을 해야 한다. 가장 큰 저주의 벌은 본인이 가장 수치를 느끼는 것이고 뱀의 저주는 너무 간교하고 슬기로웠지만,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이다. 사단은 흉내만 냈지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이 뱀의 저주이다. 이런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게 하는 자들이다. 맨날 옳고 그름을 따진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도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저주이다. 뱀을 완전히 저주하셨다. 완전히 이제 낮아진 자세로 수치스럽게 납작 엎드리게 이 더러운 땅을 닦고 다니는 문자적으로 수치스럽게 보여 주는 것이다. 문자적으로도 그게 뭔가 우리가 수치를 느끼는 것이다. 말씀이 안 들이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완전히 저주이다. 사단은 오늘 완전히 패배했다. 저주 심판으로 패배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오심으로 십자가에서 결박당했다. 결박당했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예수님 재림 때 완전히 죽을 것이다. 우리는 으르렁 거리는 사단과 싸워야 한다. 사단에게 저주를 내리셨는데, 선악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벌을 내리셔야 하겠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대안을 먼저 주시고 벌을 주신다.
2. 대안을 주시는 하나님. 대안은 예수 그리스도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뱀은 저주 하셨지만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과 하와를 저주 하실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대안이 무엇인가? 동정녀 몸에서 태어나신 여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이다. 뱀과 여자가 서로 결탁을 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이제 쫓겨나게 생겼으니까 이제 여자와 뱀은 원수가 되었다. 서로 서로 좋아했다가 이제 원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사단이 저주를 받았는데, 여인의 후손도 저주 받게 하기에 가장 총력을 기우리겠죠? 나도 저주 받았는데... 그래서 여자와 뱀과 원수가 된 것이다. 여자의 후손도 원수가 될 것이데, 여자의 후손은 머리를 부수고 뱀은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머리를 치는 것이 완전히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자와 사단과 원수인데 발뒤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계속 구세주를 못 오도록 하는 것.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영아 학살, 공생애 때 마귀시험, 가롯 유다의 배반,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이 발뒤꿈치를 상하게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발뒤꿈치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가 되셨다. 여인의 후손이 우리의 대안이 되는 것이다. 아담이 계속 변명과 책임전가로 회피하고 있을 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여인의 후손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대안을 가지고 찾아 오셨는데, 바로 이 대안 예수 그리스도가 창3:15 원시 복음이다. 최초 복음. 최초로 예수님을 거론한 구절이다. 성경에서 원수라고 처음 나오는데, 원수란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바라지 못하도록 복을 받지 못하도록 꼬드기는 것이 원수인 것이다. 불신결혼, 이혼하도록 꼬드기는 것이 복을 받지 못하도록 꼬드기는 것이다. 원수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과 원수로 자리매김 되지 않아야 할 될 것을 구분해야 한다. 핍박하는 남편이 원수인가? 무시하는 남편이 원수인가? 마약하는 사람이 원수인가? 그것은 원수가 아니다. 마약하는 남편은 원수가 아니지만 마약은 원수이다. 우리는 이것을 반대로 적용한다. 우리의 원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속에 있는 영. 그 영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예수를 잘 믿게 하고 교회도 잘 믿게 하면서 경계를 다 풀어놓고 이렇게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가게 하면서 돈도 잘 주면서 더 좋은 꼬임을 하면서 꼬이는 것이다. "우리 유럽에 여행을 갈까? 아이스쇼가 좋아~" 이렇게 하는 것이 핍박하는 것보다 더 무섭다. 나 당신 예수 믿는 거 괜찮아 . "나보고만 믿으라고 말하지 말어." 경계태세를 풀어 놓는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인류 역사 이래로 그러므로 여자의 가장 큰 역할은 후손 낳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손을 낳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후손을 낳겠는가? 후손을 낳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자, 여자에게 벌을 주시는 것이다.
3. 축복의 벌을 주신다.
사단에게는 저주의 벌을 주셨지만 남자, 여자에게는 축복의 벌을 주셨다. 먼저 여자에게 축복의 벌을 주셨다.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잉태의 고통을 주신다. 잉태는 ‘섭섭하다, 근심하다. 슬퍼하다. 모양을 만들다’의 뜻이 있다. 우리는 영적으로도 사람을 하나를 전도하려고 하면 섭섭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일들이 많은지 모른다. 처음에는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고통이 아니었는데, 죄를 범한 다음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아주 고통이 되어버렸다. 근데 고통을 통하지 않고는 너는 생명을 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벌로 주셨는데 아멘 해야 하는데, 나 싫어요. 그러시면 안돼요. 그래서 아기도 반드시 자연분만을 통해서 낳는 게 성경적이다. 그래서 고통이 참 축복이다. 고통이 없이는 안 되는데, 우리는 고통이 너무 싫어한다. 여자가 해산을 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디2. 아이들을 키우는데 끝임 없이 그것이 벌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싫어하면 안된다. 이걸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벌로 받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저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남편을 사모하는 벌. 물이 넘쳐흐르듯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갈망을 사모한다고 했다. 굶주린 자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같이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갈망하는 것을 나타낸다. 남자의 사랑을 갈망하면서 남자를 기다리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 상대를 찾아서 사모하고 결혼을 했는데, 그 순간부터 사모하기 때문에 수없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편을 사모하지 않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는데 무슨 상관을 하겠는가? 사모하니까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모를 하는 것이 벌로 주셨다. 남편이 다스릴 것이다. 그냥 다스린다는 것보다 가혹하고 착취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의지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해질 것이다. 사모하는 것이 형벌이 되다보니까 여자는 남편 때문에 깨어지는 것이다. 똑똑하면서도 결혼생활이 가장 큰 의미가 있고 결혼생활이 깨지면 가장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잘 모른다. 이혼을 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평생 떳떳하지 못하다. 여성해방 운동을 부르짖어도 남편과하고 관계가 좋지 않으면 우리가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원죄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남편의 다스림을 받으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이다. 형벌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인 사이가 갈망하고 착취당하는 착취지배당하는 관계로 변해 버렸다. 남편을 향한 이런 사모 때문에 욕망 때문에 이러한 착취를 다 허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끝없이 갈등 구조 속에 있게 된다. 죄인이니까 싫다. 일부로 사모 안한다. 사모로 해도 집착적으로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다스림을 받는 것이 사모하다보니까 노예처럼 되고 거꾸로 주장하고 싶고 남편은 사모 받기가 싫다. 결혼할 때까지는 남편도 사모하는데 그런데 남편이 되고 나면은 사모를 안한다. 남편을 사모하라고 했지 남자를 사모하라고 하지 않았다. 남편을 사모하고 복종하고 순복하는 의무를 주셨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면 축복이 될 터인데, 그리스도 밖에서는 고생인 것이다. 이것이 예외인 사람이 없다. 이 원리를 모르면 죽을 때까지 고생을 해야 된다. 여자들은 고생하고 애를 낳고 남편을 사모하고 다스림 받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들이 엄마를 존경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잘 모른다. 알코올 중독자이든 일단 결혼을 하면 남편을 사모해야 한다.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원죄의 형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을 받으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여자한테 왜 기가 막힌 형벌을 주셨는가? 남자는 흙이고 여자는 뼈이다. 재질이 너무 우수하다. 흙이 뼈를 너무 우러러 보이니까 꼬일 때 어벙벙하게 가만히 있게 된 것이다. 부인님이 너무 훌륭하셔서 가지고 티클이 감히 뼈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똑똑한 사람은 영리하고 슬기롭다. 뱀처럼 비슷하다. 사단의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가 있다. 뱀의 생각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많다. 여자가 그러니까 끼어들어갔다. 그런데 아담은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여자가 죄에 물들게 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흙을 뼈가 사모하는 벌을 주신 것이다.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사모하게 만들었다. 뼈는 가만히 있으면 잘난 척하니까. 그래서 여자는 계속 밟아야 되는 것이다. 그럼 왜 그렇게 두들게 패야 되는가? 여자를 왜 이런 형벌을 주는가? 결국은 여인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렇게 참다보면 어머어마한 구세주가 예수님이 탄생한다. 중심 잘 잡고 있으면 온 집안을 구원할 사람은 여자라는 것에요. 예수님은 이 땅에 약한 모습에 남자의 모습. 흙으로 오셨다. 그러나 열 달 동안 그 몸을 이제 빌려서 오시는 것은 여자이다. 약한 흙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몸은 여인의 후손의 모습을 통해서 결국은 때가 차매 여자의 아들을 낳게 하시고. 내가 돕는 배필이 되어가지고 내가 강한자라면 은사를 주시고 너무 능력을 주셨다면 무조건 여러분은 남을 섬기야 하는 것이다. 약한 자를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으면 그것으로 내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주 낮아져서 죽어져서 밀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너무 힘들어서 자꾸 포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벌을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다. 저는 제일 잘하는 거 꼽으라면 이혼하지 않고 결혼을 잘 해가지고 끝까지 중수했다는 것이다. 입시 인내보다 결혼의 인내가 더 힘들었다. 결혼 중수한 것이 참 기특하다. 결혼생활은 지킬 가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 중수이다. 일단 결혼하면 남편을 사모해야 한다. 중수하는 것이 제일이다. 내 옆에서 이혼 한다고 하면 말려야지 한 마디 말도 못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똑똑하니까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감당할 만하니까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수준 높게 보기 때문에 자식고난 남편 고난 바가지로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벌을 받아도 축복의 벌을 받아야 한다.
17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남자들은 흙이니까 자기가 흙을 오염 시켰다.
18,19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남자들은 흙으로 만들어진 주제에 흙을 오염 시켰다. 상수도에서 먹물을 뿌리면 모든게 오염되듯이 자기는 다스려야 할 사람이 오염시켰으니 땀을 흘려야 먹는다. 그러니까 얼마나 고생과 수고를 해야 먹겠는가? 남자들은 노동이 고통인 것이다. 일이 고통인 것이다. 남자들은 바람 펴서 안돌아 온다. 직장이 없어야 돌아오는 것이다. 일 때문에 다 깨지는 것이다. 직장이 안된다 하면 돈도 못 버냐 하지 말고 격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집에 주님께서 부르시는 기회가 왔네~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일 때문에 주님이 부르시는 데 일 없다고 무시하면 되요?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인인데~ 남자들은 일 때문에 깨지게 되어 있다. 일이 노동이 되지 않고 수고가 되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이 되려면 이것을 벌로 잘 받으셔야 한다. 앉으나 서나 남자들이 일을 하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땀흘리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들은 기쁨을 하나도 못 느낀다. 청소년의 일에 대해서 이중적 태도를 배운다.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되느냐?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샵은 놀이 같다. 근데 자신이 일로 여겨지는 활동을 할 때 일이 자신의 앞날의 의미를 가지며 그 자부심을 높여준다고 대답을 하는데, 일로 여겨지는 활동을 하는 동안 굉장히 기뻐해야하는데 그렇지 않다. 실제로 알바하는 아이들을 보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 즐겁지는 않다. 그들은 일 같지 않고 놀이 같지도 않는 이런 것을 할 때 가장 괴로워한다. 칙센트 미야이의 몰입의 즐거움--> 별로 즐겁지도 아니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아니하고 이런 일로 소일을 하면서 자란사람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인생애서 이렇다하는 의미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태도가 평생을 결정하는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아주 집중을 해야 하는데, 돈이나, 여가 등 기타 요인보다 현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몰입하면 자신의 삶에 행복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만사에 힘들어하는 돈 많은 백수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바쁜 목수가 삶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가장 집중하는가 하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의 가치를 더하면서 성공이라는 정말 누군가의 긍적적인 가치를 더할 적에 이런 신들리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지금 가장 남들에게 긍적적인 남들을 살리는 일을 하는 우리들 목장 모임이 얼마나 여러분들에게 직장 생활을 위해서 좋은 줄 알아야 한다. 리더십을 계속 키워주고 일대일을 통해 그 사람의 그것을 계속 그것을 계속해서 끄집어내는 훈련을 하게 되면 직장에서 여러분은 가만히 있어도 돈 주고도 못사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은 이 사회생활에서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벌 잘 받게 해주는 거, 그래서 하나님께 복을 잘 받도록 해주는 축복의 벌이 되는 것이다. 자원해서 하는 것이 축복의 벌을 잘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벌을 잘 받게 되면는 영적후손을 낳는 것을 알게 된다.
4. 벌의 목적은 영적후손을 낳기 위한 것이다.
20절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남편 사모하고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래서 예수가 오는군요. 산자의 어미라 칭해주셨다. 여러분의 모든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한다. 고통스런 남편을 붙여주고 나쁜게 아니고 영적후손을 낳기 위한 지름길이다. 예수도 없는데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뱀처럼 저주받은 것이다. 내가 그러면 영적후손을 낳기 위해서 애쓰면 가죽 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동안에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예수 믿기 전에 벌로 인해서 챙피했던거, 나는 우리 남편이 때리고 돈도 못 벌고 이런 모든 수치스런 운 것들이 전도하기로 작정하면 갑자기 가죽옷을 지어 입히셔서 완벽하게 수치를 가려주셔서 하나도 수치스럽지 않다. 우리가 여기서 간증을 하여도 수치스럽지가 않다. 그것이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산 자의 어미가 되게 하신다. 생명을 가져다주는 어미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은 필요한 것이다.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죄 지은 상태에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하는 것은 저주이다. 이 땅에서는 토지 갈고 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이 영생하는 길인데, 가만히 앉아 선악과 먹고 옳고 그름을 날마다 따지는 박사들이 이제 영생하려고 생명나무까지 넘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주인은 예수라는 것이다. 이제 에덴 동산은 하나님께서 자물쇠를 채웠다. 우리는 천국을 향하여서 문을 활짝 열어났기 때문에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다. 고통을 통해 영적 자손을 낳는거 이것을 통해서 천국 길인 것이지 유전공학 공부해서 영원히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고생과 수고를 빨리 끝나게 해주시는 것이 우리의 원죄의 형벌로 인해서 그게 하나님의 배려인 것이다.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생을 얻는 천국으로 가는 이것을 위해서 이 땅에서 남편과 아내가 수고를 하고 자녀가 수고를 하고 우리를 먹게 하는 직장이 수고를 해가지고 이 모든 것은 이혼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후손 낳기 위해서 서로가 나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다. 이러는데 어떻게 여러분이 이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편에게 부인에게 자녀들에게 이 모든 주신 복을 축복의 벌로 받고 저주 받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보호형: 추석모임때 가족들과 화목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특히 매형.
아버지 추도 예배 잘 지낼 수 있도록.
종율형: 수고하는 벌 잘 받을 수 있도록.
추석 때 친척들 잘 섬길 수 있도록.
객관적인 사람이 되고 솔직한 사람이 되도록.
성남: 입시반 선생님 잘 뽑을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잘 하려고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선까지 할 수 있도록.
수연: 아토피가 심해져서 빠른 회복이 있도록.
욱진: 화요일 가족모임 중에 두려움 내려놓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도록. 양육중에 사단의 방해를 이기도록.
*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