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요약
창세기 4장 1~7절
제목: 죄를 다스릴지니라
짐바르트교수의 스탠포드 감옥 실험에서 인간은 환경에 따라 선해졌다가 악해졌다 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휴머니즘은 이 땅에 없습니다. 인간은 원죄의 형벌 가운데 있기 때문에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다스릴까요?
1. 여호와로 말미암아 죄를 다스립니다.(1절~2절)
1절에서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고 하여 여호와의 도움으로, 이것만이 죄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를 잉태하여 낳는 고통을 통하여, 이 고통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카인은 ‘획득하다, 얻다, 세우다’라는 뜻으로 카인을 낳고 기뻐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2절에서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아벨은 ‘공허함’이라는 뜻입니다.
카인을 획득하다가 아벨을 낳으니 허무해졌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회개 없이는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예수님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연약한 씨 ‘셋’에서 오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3절~4절)
3절 “세월이 지난 후에”라고 하여 심사할 때가 가까워져 왔습니다. “카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3절)
카인은 많고 많은 수확물중 일부를 제물로 드립니다. 카인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아닌 기복적이고 일시적인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라고 하여 아벨은 카인과는 달리 얼마 되지 않은 양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을 제물로 드립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열심히 헌금하는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아벨의 예물을 받아주십니다.
참된 예배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 1장 15~18절)
말씀 듣는 구조 속에서 날마다 회개하고 내 죄를 씻음으로 내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3. 잘못된 예배의 결과인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5절~7절)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5절) 하나님께 신뢰하는 마음이 없으면 분노가 생깁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 비교해서 잘 되면 맹렬한 시기심이 올라옵니다. 특히 형제 간 끼리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목장에서 목자의 처방에 대하여 안색이 변하면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헌금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마음입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양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인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후에 분을 이기지 못하여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사람은 감옥에 가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이 갇혀 있는 죄수 자들의 대화를 통하여 자기가 하지 않은 범행 수법을 배움으로써 더욱 악해집니다. 욕심과 탐심과 분노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말씀을 듣는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그것들을 가지치기 할 때 다스릴 수 있습니다.
버리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더 상위에 있습니다.
버리는 것은 지혜요, 채우는 것은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버리기 이전에 채우는 것을 날마다 가지치기 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죄를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여호와로 말미암아”라고 해야 합니다.
세월이 가기 전에, 심판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분노가 오면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 하십 시요. 내 예배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보고, 깨닫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죄를 다스리라고 하십니까?
헌금도 하고 생활 예배를 드리는데도 내 안에 탐심과 질투가 있습니다. 카인은 인생이 힘든 것이 다 아벨 때문입니다. 아벨이 믿음도, 성격도 좋아서 질투합니다. 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길이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 심사할 때가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몹시 분하고 안색이 변하여 살 수 없습니다. 분노는 예배의 결과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인내, 온유, 절제, 희락, 화평이니 십자가의 능력이 아니면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를 만났을 때 주님이 예배를 통해서 나를 만나주십니다. 형제간의 반목이 나 자신의 문제라 생각하고 죄의 소원이 있지만 죄를 다스리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죄를 다스리라 하는데 끊임없이 죄의 소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업도 안 되고, 승진도 안 되고, 남편의 바람에, 자식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인생이 허무합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사건이 오니 공허하고 슬픕니다. 내 예배가 기복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라고 보이는 것이 '이생' 이라 서운하고 창피하고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내 욕심을 버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릅니다. 카인이 하나님께서 양육하셨음에도 들리지 않아 아벨을 죽였듯이 원죄의 뿌리 깊음을 봅니다. 아벨이 피의 제사를 드렸듯이 내 죄가 나를 증거 해서 가죽옷을 입혀주시는 주님의 제사로 말미암아 죄를 다스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저희를 공동체에서 욕심을 버리는 훈련을 하게 해 주시고, 죄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형제간의 반목에 자책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극복하기를 원합니다.
양털같이 희게 하시는 역사가 이루어질 줄을 믿습니다.
이제부터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혼을 깨워 주시옵소서. 사단아 물러갈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목장모임
추석을 마치고 모인 목장 모임에서 기쁜 마음으로 모두 나와 주셨습니다. 추석 때 믿지 않은 친척들을 보면서 도전을 받았다는 형제님들을 비롯하여 나눔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기도제목>
1. 박기연 형제님(77)
일대일 양육 숙제 규칙적으로 하도록.
시간 관리 잘 하도록.
2. 이수호 형제님(77)
시간의 십일조를 잘 드릴 수 있게.
가족 구원을 위해.(식사기도 잘 할 수 있기를)
3. 김철주 형제님(78)
이번 주에 출장이 있는데 안전히 잘 다녀올 수 있도록. 큐티 잘 할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하는 일 잘 마무리 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믿음의 배우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라는 자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소서.
가족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4. 장현성 형제님(79)
겸손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믿음의 배우자를 위해.
부모님의 관계 회복을 위해.
5. 진유현 형제님(76)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고등부 아이들 판단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일에 대하여 우선순위를 잘 정할 수 있도록.
가족 구원을 위해서.
6. 이존일 형제님(79)
지체와의 교제에 있어서 먼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매제의 건강을 위해서 치유의 손길을 주시고 그 과정에서 동생 부부가 하나님께 더욱 나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