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요약
제목: 그는 나보다 옳도다(창세기 38장 12절~30절)
1. 문제의 원인은 “내가 옳도다”입니다.(12절)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유다는 요셉을 팔고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아들 죽고, 며느리 #51922;아내고,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습니다. 부인까지 죽었으면 유다가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하는데 히라가 좋아 안 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죽게 함으로 세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을 끊게 하시는데도 유다는 여전히 반석 같은 친구인 히라로 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공동체에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싸인 임에도 유다는 여전히 세상에 머무릅니다. 유다는 영적인 선민사상이 있어 가족 신화 있습니다. 가족 비밀 있는데도 그래도 ‘나는 괜찮아’ 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거짓말하여 장자권을 빼앗고 형 르우벤은 빌하와 통간하고 그 다음 형 2명은 살인하고 디나는 강 간 당하고, 이런 것을 속이고 살면서 가나안에 정착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보여준 삶이 없어 아들이 성적으로 방종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고센 땅에 거하게 하고 노예 생활 400년을 시키기 위해서 유다의 가족사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가는데 요셉을 사용하고, 혹시 요셉이 구속사의 주인공이 될까봐 유다를 등장시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구속사를 가게 함을 보여 주십니다.
테미몰투비 작가는, 거절 수치 친척에게 성폭력 당하고 혼전 성 관계 등 허물이 많음 에도 그 상처를 숨기기 위하여 다른 일에 몰두 합니다. 속으로는 끊임없는 절망감 가지고 살면서도 크리스천이라 비밀로 하며 안과 밖이 다른 삶을 삽니다.. 그래서 대중에게 인정받는 강사로,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중적인 삶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인정에 목말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잠도 안자고 노력하여 자신의 삶을 지치게 됩니다. 열등감의 심볼은 내가 “옳도다” 입니다.
2. 결정적인 악을 행할 수 밖애 없습니다.(13~24절)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 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면박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13~19절)
유다는 아들들과 아내가 죽은 슬픔을 일로 그리고 쾌락으로 잊으려 했습니다. 아버지가 성적으로 방종하니까 아들들이 방종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 아들들이 죽었는지 알겠지요?..다말이 신전 창기로 변장을 했음에도 유다는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창녀로 변장한 다말에게 약조물로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를 요구하자 유다는 이에 응하여 그것을 다말에게 줍니다. 도장과 끈, 지팡이를 다말에게 줌으로써 주도권이 유다에게서 다말에게로 넘어갑니다.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는 약속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유다는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신전 창기와 놀아난 행위에 대한 죄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유다는 이렇게 공동체를 떠나 창녀와 놀아났습니다.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20~23절)
유다는 매춘 행위로 인한 부끄러움을 숨기고 싶고, 친구인 아둘람 사람이 자기가 매춘 행위를 한 신전 창기를 찾지 못하였다고 함으로 친구에게 책임 전가를 합니다.
“석 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24절)
유다는 자기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며느리인 다말이 행음하여 잉태한 것을 보고 불살라 죽이라고 합니다. 며느리를 창녀로 보고 그로 하여금 잉태하게 한 것은 성경에서 한 번만 나오는 가장 큰 악입니다. 유다는 그런 큰 악을 저질렀음에도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만 보고 “너 틀렸어”라고 말합니다. 내가 옳은 자는 다른 사람이 늘 틀렸기에 남을 정죄합니다. “네가 옳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열등감 덩어리요, 자기의 상처가 많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축소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를 탓하며 환경 탓을 하는 유다의 태도를 봅니다. 유다가 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다말을 잉태케 하여 만천하에 수치를 드러내셨음에도 유다는 깨닫지 못합니다.
3. “너는 나보다 옳도다”가 되어야 합니다.(25~26절)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25절)
다말의 동기는 계대 혼인법에 의해 셀라를 주어야 하는데 유다가 주지 않으니까 자신의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습니다. 욕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기업을 무를려고 영적 후사를 낳아야하기에 자기 수치를 무릎 쓰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다말은 그로인해 찬란히 구속사의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26절)
여기서 유다는 다말에게 “그는 나보다 옳도다” 라고 말합니다. 창세기의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가 욕정이 아닌 영적인 후사를 낳기 위하여 믿음으로 한 행위임을 인정합니다. 드디어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기로 했으나 주지 않았고 자신은 창녀와 놀아났고 그것을 깨닫게 되어 다말이 옳다는 고백을 합니다. 유다는 공동체 고백을 함으로써 며느리를 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근신 상간의 고백 후에 다시는 다말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테미몰투비의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비밀’은 ‘정직(Rightness)’입니다.
나의 정직과 내 상처를 인정하는 것, 진리에 “옳소이다”라고 하며 마음을 여는 것이 항상 주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나의 수치심의 죄를 감추지 않고 담대히 드러낼 때만이 치유가 일어나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잊혀져갈 때 다른 사람이 다말처럼 ‘도장, 끈, 지팡이’를 내밀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이제는 “내 책임이다”라고 말하며 고백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결국 다말이 유다를 도와 살렸습니다. 유다는 “너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고백하며 말할 때 하나님께서는 손해 보지 않게 하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4. 온 집안을 살린다.(27~30절)
성숙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당신은 나보다 옳으십니다. 라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서로 윈~윈하여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유다와 다말이 다 올라갔습니다.
“임산하여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 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27~30절)
다말은 쌍둥이를 낳고 아이들의 이름을 ‘베레스’와 ‘세라’라고 짓습니다. 다말은 아이들을 낳기까지 영육간의 고통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머리부터 나와야 하는데 손이 먼저 나왔습니다. 손을 넣자 둘째 아이인 ‘베레스’가 첫째 아이로 나왔습니다.
다말이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이 사건이 얼마나 축복을 받았으면 후에 (그 집의 계보를 잇게 하기 위해) 룻이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게 되자 룻의 남편인 보아스를 축복하면서 이 구절을 언급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룻기 4장 12절)
베레스의 세계가 다윗에게로 이어집니다. 도덕과 윤리로 해석하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구속사로 보아야 합니다. 유다의 술직한 고백으로 야곱이 알아 들어 49장에서 요셉이 휼륭하지만 예수 조상으로 유다를 세웠습니다.
내 인생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축복입니다.
항복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오게 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 치유하십니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비현실적인 자기 통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들게 되어 결국에 공동체로 오게 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상대적인 의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신화에 쌓여서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음란에 빠집니다. “내가 옳다”가 주제가입니다. 며느리와 동침한 사건에서 내가 오픈할 것이 무엇입니까. 내 아픔에 직면하고 공동체 고백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고 예수님이 오게 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고 고백하는 지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참 슬픈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다말을 기억하시고 다말 혼자 중심 잡고 난산한 ‘베레스’ 바로 여기에서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때로는 벽에 부딪치고 이로 인해 주저앉고 싶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은 당신의 것입니다. 예수님께 수치를 드러내므로 다른 이들을 살리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어떤 환경에도 원망하지 않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말하는 우리들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내 책임입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공동체를 떠나 아들들이 죽고 일에 빠지고, 쾌락에 빠지고 신전 창기가 며느리 다말인 줄 모르고 관계를 합니다. 며느리가 잉태하자 그를 불살라 죽이라고 하는 모습이 저희 모습입니다. 이에 지팡이와 끈, 그리고 도장을 보이며 자기의 수치를 깨닫게 하는 며느리를 보면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수치를 오픈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시고, 각자 가정의 다말이 되어 온가족의 죄가 내 죄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약속이 지팡이, 끈, 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적으로 시아버지와 며느리와의 관계를 보며 여러분이 혹시 유다와 다말처럼 힘든 관계가 있습니까? 부도덕은 용서 되지만 불신앙은 용서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 말씀하시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해 주십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목장모임
< 기도제목 >
1. 진유현 형제님
-작은 외삼촌의 쾌유를 위해.
-요새 피곤하고 힘이 없다고 합니다. 건강할 수 있는 체력을 주소서.
-교회 형과 같이 일하게 되는데 잘 시작할 수 있도록.
2. 이수호 형제님
-텔레비젼 금식을 실행할 수 있도록.
3. 고경표 형제님
-영어 공부에 지혜를 주시길.
-좋은 차, 좋은 집, 믿음의 배우자를 구할 수 있도록.
4. 장현성 형제님
-부모님과 아름다운 화해를 할 수 있도록.
-믿음의 배우자를 위해.
5. 이존일 형제님
-옳고 그름에서 벗어나 “옳소이다” 할 수 있도록.
-믿음의 배우자를 위해 말씀 보며 기도할 수 있도록.
-외삼촌의 쾌유를 위해.
6. 박기연 형제님
-이번주에 일대일 양육 2주 진도를 나가게 되는데 학업과 병행하는데 있어서 시간 잘 분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공부에 지혜를 주시기를.
7. 김철주 형제님
-큐티 매일 할 수 있도록.
-끊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단칼에 끊을 수 있는 믿음 주시기를.
-믿음의 여자 친구를 위해.
8. 김학역 형제님
-내일부터 영어 학원을 가게 되는데 영어 공부에 지혜를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