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명이라 (마가복음 14:53-62)
“내가 예수를 죽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1.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베드로 (53-54절)
대제사장과 장로, 서기관들이 예수를 심판하기 위해 산헤드림 공회에 모였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자신의 편의와 쾌락을 지키는 악한 의도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이와 비슷합니다. 과거에는 위법이었던 낙태가 이제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당연한 권리처럼 허용되고 있으며, 수많은 태아가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가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 54절의 베드로처럼 예수를 '멀찍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했지만, 가까이 가면 마주할 '십자가'가 두려워 적당한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는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하는 '세상 반, 예수님 반'의 신앙입니다. 우리 역시 현실의 고통과 손해(원치 않는 임신 등) 앞에서 십자가를 지기 싫어 주님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답정너'로 가득한 공회원들 (55-61절)
공회원들은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결론을 내려놓고 비밀리에 모였습니다. 증거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겠다는 목적에 맞춰 증거를 짜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 삶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이유는 예수님이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나 옳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진리가 나의 부정함을 드러내는 것이 싫어 예수를 죽이려 합니다. 세상은 철학, 과학, 인문학 등 다양한 논리로 자기 합당화를 시도하지만, 그 증언들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유일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인권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오직 말씀 안에서만 답을 찾아야 합니다.
3.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 예수 (62절)
억울하고 답답한 심문 속에서도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 조롱과 수치를 견디신 이유는 오직 우리를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질문에는 "내가 그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침묵하면 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며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과 침묵을 분별하신 기준은 오직 '구원'이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귀히 여기고, 낙태하지 않으며, 아픈 가족 곁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현장에는 멀찍이 구경하는 베드로가 있고, 자기 의에 빠진 공회원이 있으며,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과 가까이 동행하며 생명을 살리는 삶을 선택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질문
나는 PRO-LIFE와 PRO-CHOICE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말씀에서 멀찍이 서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목장 모임보다 더 재미있어서 빠지지 않고 나가는 세상 모임은 무엇인지?
적용 질문
나는 사람의 증언을 찾는지? 말씀의 증언을 찾는지?
내가 정해 놓은 답을 고집하느라 목장의 권면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유튜브에서 신앙 콘텐츠보다 더 많이 보는 세상 콘텐츠는 무엇인지?
적용 질문
나의 안위와 편의를 지키기 위해서 죽이고 싶었던 예수, 생명은 누구인지?
그 죽이고 싶은 사람이 나를 구원해 주는 그리스도라는 것이 인정되는지?
오늘 내가 구원의 사명으로 살려야 할 생명은 누구인지?
기도제목
L
1. 이직 취업
2. 신교제 신결혼
3. TT
4. 전도축제에 동생 초청하기
F
1. 신교제 신결혼
2. 지혜와 체력
3. 생활 예배
4. TT
5. 이사 준비
6. 전도축제에 누구든 초청하기
P
1. TT
2. 신교제 신결혼
3. 교만하지않기
4. 예수로 충만하기
5. 전도축제에 동생 초청하기
목장기도제목
목장식구들 다같이 손잡고 TT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