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본문: 열왕기하 22:3-13제목: 옷을 찢으니라설교 말씀무언가 찢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찢을 것이 없으면 말로 사람을 찢습니다.본문에 요시야가 자기 옷을 찢습니다. 율법책 말씀이 찌르고 들어오니 자기 옷을 그 앞에서 찢습니다.우리는 큐티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으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큐티는 나를 찢어야 합니다.1. 부서진 성전을 수리해야 합니다.3-6절.요시야가 왜 그리 성군이었는지 행간을 읽었지만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대하 34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고 합니다. 요시야는 16세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고, 20살에 우상 제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나 성전을 수리하려고 합니다. 요시야가 어렸을 때 므낫세의 회개를 봤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회개를 본 것이 꽃 피운 것이 16세가 되어서입니다.어렸을 때, 아이 때, 청소년의 때, 모든 때가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가 되기 위해 몹시 중요합니다.아버지가 살해당했으니, 어린 나이인 요시야에게 생존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에서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마치 말벌 집을 제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온 나라를 덮었으니 얼마나 반대가 심했을까요. 백성들을 개혁하는 일이기에 하루 하루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그럼에도 요시야를 정직했다고, 좌우로 치우칠 수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우리의 전공은 치우침입니다. 남과 나, 자식, 더 잘난 자식, 고향 등 우리의 치우침은 끝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치우치지 않았다는 표현이 요시야에게만 쓰였을까요? 이런 치우침으로 내 자식을 끼고 도니 부서진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부서진 것을 보며 내가 치우쳤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부서진 것을 수리하게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채워야 할 시간이 있습니다. 우릴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환경이 바뀌는게 아니라 부서짐으로 내가 성숙해지는 데에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세요?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고난 때문에 우리가 여호와의 길로 행할 수밖에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명의 길,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잘 인도되고 있으니 앗수르가 약해지고 바벨론이 강해집니다. 주변 강대국이 유다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요시야가 하나님을 찾으니 개혁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고난의 18년을 지나고 나니 부서진 성전 건축에 진심을 내게 됐습니다.3절에 왕이 보내었다고 하는데, 종교 개혁하는 일의 모든 주체, 사람을 보내고 주관하는게 요시야 왕으로 되어있습니다. 요시야 왕이 생각을 갖고, 확신 가진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개혁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개혁에서 부서진 성전을 본 것은 요시야 말고 없었습니다.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법까지 알려주며 성전을 수리하라고 합니다. 이걸 보면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은 사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7절.성전 감독자와 건축자들이 진실한지 알 정도로 요시야가 그들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그 사람들을 살피고 분별했습니다. 판단과 다른 분별이 없으면 재정과 시스템이 갖춰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중요합니다.성전이 예배의 자리이기 때문에, 부서진 성전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의 성전이 회복되기 위해 많은 성도, 지체, 공동체가 동원됩니다. 곳곳의 전문가와 은사가 총동원됩니다.세상은 100%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고, 이타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잘 배워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혼 구원 때문에 모이는 곳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매일 큐티로, 예배로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나도 살고 남도 살려야 합니다.적) "언제까지입니까?" 하며 기다리는 일은 무엇입니까?기다리는 시간이 나를 치우치지 않게 지켜주는 길임을 믿습니까?내 예배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부서진 곳은 없습니까?가정, 교회, 직장에서 영수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직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까?나의 수입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열매입니까?2.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야 합니다.8절.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당연한데, 발견했습니다. 그 전에 잊혀졌던 것이 당연한줄로, 없는 것도 모르는체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힐기야가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줍니다. 율법학자라는 뜻입니다. 대제사장도 그렇지만, 율법학자 마저도 율법이 없습니다. 율법학자, 최고의 박사도 율법을 몰라서 읽고 있습니다. 그만큼 나라가 부패했습니다.9-10절.서기관 사반은 수리 공사 상황을 요시야에게 보고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찾은 돈을 감독자에게 맡겼다고 보고합니다.힐기야는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고, 심복은 돈을 찾았습니다. 두 뜻에 같은 단어를 사용했는데, 해석해보면 말씀 없이 헌금만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 율법책을 찾았으니, 헌금의 원래 목적대로 쓰이도록 제자리를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따라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샬롬입니다.사반이 율법책을 보고하는데, 율법책이 아닌 어떤 책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반은 충직한 심복인데 율법책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왕 앞에서 두 번째 읽어도 뜻을 모릅니다. 율법 학자가 행정을 하고 있으니 중요도를 모릅니다. 이것이 누구에게 왜 주신 말씀인지 모릅니다. 문자적으로만 알고, 하나님이 주신 영적 의미를 모르는, 말씀이 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은 지금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11절.사반의 읽는 것을 듣고 요시야가 반응하고 옷을 찢습니다. 수고만 하고 열매는 요시야가 누립니다.왜 요시야가 옷을 찢었을까요?요시야는 태어나서부터 온생애를 개혁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이미 개혁이 시작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책을 발견하기 위해 성전을 재건축한 것은 아닙니다.5절을 보면 감독자의 손에 돈을 넘겨줬습니다. 그리고 감독자는 작업자가 진실하게 행했기 때문에, 작업자에게 그 돈을 줬습니다. 이때 쓰인 단어가 힐기야가 사반에게 율법책을 건낼 때도 쓰였습니다. 요시야가 정직하게 행하니 하나님이 율법책을 요시야에게 넘기시고, 더 나아가 백성들에게까지 주게 하셨습니다.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진실히 행할 때, 은이 주어지고, 율법책이 주어집니다. 율법책을 발견하려고 성전 수리를 하려고 한게 아니었습니다. 작업자들이 진실하게 일한 것은, 참 감독자이신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진실해서 회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하나님이 감독자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자에게 말씀을 물려주게 하십니다. 진실히 행하는 사람들이 성전에 보여들었는데,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 돈을 진실되게 사용합니다.비로소 하나님을 찾으니 정직하고 더욱 말씀이 임합니다.내게 발견된 말씀을 읽어야 하는데, 말씀이 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이 임하면 말씀을 찾았다고 하게 될 날이 옵니다. 그러면 발견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매일 읽기만 해도 능력인데, 한번 더 큐티하기를 결단하고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살려가기 위해 서로 응원하기 위해 목장에 나가야 하고 전도해야 합니다.적)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킵니까?말씀은 내 삶에서 발견됩니까, 내 삶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중심에 있습니까, 가장자리에 있습니까? 말씀을 언제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돈과 말씀이 임하기 위해 얼마나 진실하다고 평가하시겠습니까?진실의 목적이 사명입니까, 야망입니까?3. 듣고 찢고 물어야 합니다.11절.율법책의 말을 듣자마자 옷을 찢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고 찢음 사이가 아주 찰나입니다. 변명, 계산이 파고들 틈이 없습니다. 이게 말씀을 진짜로 들은 사람의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옷을 찢음은 슬픔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체면과 자존심을 스스로 버리는 일입니다. 인간에게 제일 어려운 일입니다.요시야는 성군인데, 아들들이 악합니다. 여호야김이 예레미야 36장을 보면 아버지와 똑같은 상황을 마주합니다.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는데,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화로불에 던집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두려워하거나 옷을 찢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아버지나 아들이나 똑같이 찢는다는 단어를 썼는데, 아버지는 말씀 앞에서 옷을, 아들은 말씀을 찢었습니다. 자신을 찌르고 들어오는 말씀 앞에서 회개가 싫어 말씀을 찢은 것입니다.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묵상하지 않으면, 지식과 경건의 형태로만 읽으면 아내와 자식, 지체를 찢어댑니다. 누가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하면서 지적만 합니다.나를 찢어야 합니다.요시야는 말씀이 자신을 찢게 두었습니다. 왜 옷을 찢는지가 중요합니다.12-13절.옷을 찢고나서 신임하는 사람 다섯을 선발해 말씀에 대해 여호와께 물으라고 보냅니다.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풀려고 자존심을 세우지 말고 물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것이 구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왜 요시야는 여호와께 물으라고 할까요? 조상들이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가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힐기야가 발견한 책은 모세 5경의 신명기 28장처럼 심판에 관한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 요시야가 옳습니다 아멘 하고 자기 삶의 현실, 인정하기 싫지만 말씀의 진단으로 진노를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여호와께 물으러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치우쳐서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았으면 여호와께 물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더 큰 회개로 나아가게 됩니다.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내리신 진노를 깨닫고 죄를 고백하고, 어찌할꼬 하며 하나님께 묻는 것이 말씀대로 하는 회개입니다.지금까지 정직하게 행했다고 했지만 성경을 모르니 깊이가 초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씀 앞에 비춰보니 부끄러워 옷을 찢어도 회개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임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하고 합리화하게 됩니다. 조상의 합리화 했던 죄를 요시야가 회개하며 애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는 회개할 것 뿐인 인생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제일 싫어합니다.내 스스로 마음을 찢기 힘드니 남의 마음을 찢습니다. 오늘 내 의, 변명, 억울함, 옳다는 확신, 자존심 같은 옷을 찢고 주님을 따라 나아간다면 우릴 받으시고 살리시고 거룩과 구원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적) 말씀을 들을 때 내 세상적 가치관을 찢습니까, 옳고 그름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까?내 삶에 내린 진노 같은 일은 무엇입니까?
A
1. 하나님과 관계회복이 1순위가 되기를2. 예배와 말씀 붙드는 삶을 살 수 있기를3. 나라와 교회와 가족,공동체를 위해 기도 하는 삶을 살기를
B
1.조울증이 재발되지않도록2.살뺄 수 있도록
C
1.직장의 안좋은 인식으로부터 지켜지길
D
1.마인드와 멘탈관리 및 잘 다스리길2.좋은인연 만날 수 있길 개인적인 준비를 잘 할 수 있길
3.보다 올바른 성적 가치관과 방향을 확실히 알고 지켜나갈 수 있길
E
1. 건강관리 잘 할수 있도록2. 공부 꾸준히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