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호 형제가
실형 10개월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많은 요셉형제들처럼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회개 없음에
우리가 예수 더 잘 믿으라고
원호 형제가 그렇게
대신 수고하고 있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인도로
잘 훈련받고 천거받아서
평안한 대답을 해주는
원호를 기대합니다.
이글을 보는 우리들 공동체 여러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중보가 필요합니다.
평안한 대답
<41:1~16>
죄많은 사람이 죄 많은 것을 깨닫을 때 평안한 대답을 할 수 있다. 평안한 대답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음을 느끼면서,
우리는 늘 인내의 쌍곡선이 교차하는 인생을 산다. 39장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고, 그 형통이 40장에서는 술관원장의 기억에서 요셉이 잊혀지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반면에 4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꿈을 주시고 결국 그 해석을 위해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말씀에는 형통이라는 언급이 없다. 도리어 이번에는 요셉이 입으로 하나님을 고백한다. 힘든 환경을 거칠수록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형통이라는 것을 깨달은 요셉은 이제 하나님과 일심동체가 되었다. 저절로 평안한 대답이 나오게끔 된 요셉...이제는 환경으로 변명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는 형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요셉아 형통이란다 하고 말씀해주시지 않아도 자신이 먼저 평안한 대답을 전하며 형통을 누리게 된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한 대답을 언제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1. 시험이 가장 어려웠을 때 평안한 대답을 주신다.(1~7절)
만 2년후에 바로가 꿈을 꾸게 되었고, 그 2년을 요셉은 잘 견디었다. 영웅은 용기를 영원히 지속하는 자가 아니라 5분을 더 인내하는 자이다. 요셉이 인내한 2년이 그 5분에 해당하고 운명을 바꾸었다.(단 예수없이 세상을 인내하는 것은 욕심의
발로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인내로 훈련을 받으며 실력을 키운 요셉에게 가장 어려운 시험이 주어진다. 바로의 꿈이 바로 그 시험이고 그것은 요셉만을 위한 꿈이다. 이처럼 내가 믿는 예수를 위해서 상대방이 대신 수고하는 때가 있다. 내가 예수 믿게 하려고 대신 꿈꾸어 줄 바로가 있다. 일곱 암소의 꿈과 일곱 이삭의 꿈으로 두번이나 바로에게 말씀하시지만 해석하지 못하는 바로는 그저 번민하다. (이렇듯 집안마다 해석이 안되어 두렵고 답답해 하는 바로가 있다.)
2.권세 지위 학식으로는 평안한 대답을 할 수 없다.(8절)
8절에서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이다. 무서운 꿈을 꾸는 것도 번민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미래를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인데, 검은 안경과 장미빛 안경 두가지로 미래를 바라본다. 사람들은 보통은 장미빛 안경을 쓰길 좋아하는데, 교통사고는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품고 있는 등 자신의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본기업 소니가 처음 워크맨을 만들었을 때,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너나할거 없이 실패를 장담했지만 엄청난 히트를 쳤다. 이 세상은 누구나 예측의 대가가 되길 원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우연의 문제일 뿐이다. 이처럼 학문과 지식이 탁월해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도 이러한 한계에 부딪혔다. 자신의 권력으로
꿈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나와있듯이 내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는 끝을 모를 정도로 깊지만 우리는 세상적인 학식 권세에만 눈이 멀어 있다. 그래서 바로도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사람들은 외모와 목수라는 직업으로 예수님을 무시했다.
3. 솔직한 고백으로 자신을 천거해 주는 지체 덕분에 평안한 대답을 할 수 있다.(9~13절)
12절에 보면 우리라고 술관원장이 말한다. 요셉과 술관원장은 우리가 되어 있었고 힘든 환경에 있었지만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 술관원장이 지체를 우습게 보았으면 요셉과 바로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지체의 아픔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술관원장 입장에서는 요셉이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대로 복직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쉽지 않았을것이라.
과거에 지었던 자신의 죄를 바로에게 상기시키는 일은 결코 자신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히브리 노예때문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찌질해서 말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술관원장은 요셉을 천거해 준다. 너도 나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사람을 천거할 수 있는 것이지 교양으로는 사람을 천거할 수 없다. 너 집있고 나 집있고 너 이 대학나왔고 너 저 대학 나왔고...내가 이정도는 되야지 라며 교양만 내세워서는 내 지체를 천거할 수 없다. 저 지체를 내가 돕고 싶다는 마음을 성령님이 인도하셨을 때 술관원장처럼 자신에게 손해가 될 때에도 돕는이가 될 수 있다. 2년동안 요셉의 부탁을 잊고 살았기에 의리없다고 손가락질 받을 불리한 입장에도 오픈을 하는 술관원장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내 죄와 허물이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비결이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오픈한 내 죄가 사람을 살리고, 그제서야 너 나가 아닌 우리가 된다. 내가 추억해야 할 허물은 무엇인가? 천거하고 싶은 지체가 있는가?
미국 한 사회학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55%의 사람이 아는 사람의 천거로 취업했고 30% 이상이 자신이 생각치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이 기회가 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사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만남은 제대로 된 사람과의 결혼이다. 이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기본이다. 이처럼 나를 천거해 줄 사람은 멀리있는 새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
신교제의 팁: 연애하다가 헤어지면 매달리지 말자. 기왕이면 버림 당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신다. 교만한 사람이 버린다. 차였다고 하면 축복이라고 생각하자. 차였다고 매달리면 예수님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예비하실테고 결혼의 목적이 거룩인 것을 알려면 값을 치뤄야 할 때가 있다.
4. 각인에게 해석해 주는 평안이 있다.(12절)
12절에 각 사람에게 해석해 주었다고 나와 있듯이. 요셉은 술관원장 떡관원장에게 따로 평안한 대답을 하였다. 떡관원장의 해석이 죽음이지만, 때로는 이처럼 흉한 해석이 사람을 시원하게 해주는 때가 있다. 흉한 해석을 받아도 이 땅에서 벌 잘받으면 천국가겠구나! 싶게 만드는 해석말이다. 믿는 자에게 죄값이 있다는 해석이 평안이다. 이 땅에서 드러나는 죄가 각자의 인생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각인에게 맞게 해석해 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 중에 흉한 해석이 있다해도 그 또한 평안임을 기억하자.
5. 마지막까지 자신을 돌아보는 자가 평안해진다.(14절)
하루를 천년같이 잘 기다려온 요셉...이제는 쓰실 때가 되었기에 하나남께서 바로를 통해서 급히 부르신다. 세상은 어려울 때 믿는 자를 찾는 법이다. 그걸 알아야 십자가의 길에 흉한 해석을 잘 받을 수 있다. 이제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요셉은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래서 십자가의 길이 힘이 든다. 이쯤이면 되었다 싶다가도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고백이 필요하다. 애굽에서는 수염을 깎고 사람에게 나서는 것이 예의이다.(이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완고해서는 안되고 문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깎을 수염과 갈아입을 의로움의 옷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셉이 바로의 부름으로 준비할 것은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요셉처럼 자신이 돌아보는 최소한의 순종을 해야 한다.
6. 하나님만이 평안한 대답을 주신다.(15~16절)
노예의 신분으로 어찌 감히 바로를 만날 수 있겠는가. 요셉이 말씀대로 가며 자신의 죄를 보니까 길을 만들어 주시고 쓰시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내 죄 보는 것이 만물을 붙드는 비결이고 내 죄를 정결케 한다.<히브리서 1장 3절> 16절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평안한 대답을 바로에게 하실것이라 말한다. 목사님도 평신도로 은혜를 함께 누리며 살다보니 신학교도 가게 되었고 사역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평신도의 마음이라서 우리들교회가 평신도 사역으로 섬기는 은혜를 허락하셨다고 한다. 가정회복과 구원에 대한 소망은 본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한다. 늘 갈등있는 사람이지만 말씀으로 창조케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내 안에 끝없이 쌓이는 우상이 있어서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괴롭기도 하지만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죄인이라는 고백이 매일 나오고 이것이 초심을 기억하게 하는 은혜이다. 요셉은 꿈해석으로 훈련받았고 이쯤되면 바로 앞에서 자신은 꿈해석이 특기라고 자랑할 법도 한데 하나님이 하신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이 날 알아주지 않았을 때 죽을 것 같고 분이 나며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울부짖고 있는가? 미국 최초의 흑인 주지사 로제에게 그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학창시절 피어슨 교장선생님의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사고만 치는 자신에게 고함을 치기는 커녕 " 난 너의 눈을 보고 알았다. 넌 나중에 커서 뉴욕 주지사가 될거야!" 라고 했고 그말을 신뢰하며 그에 맞게 행동한 그 아이는 주지사가 되었다. 후에 인터뷰를 통해 교장선생님은 그 일을 고백했다. "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난 그저 아이들을 사랑할 뿐입니다." 사랑의 말 한마디가 평안한 대답이 되었고 로제의 마음을 붙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평안한 대답이 바로 이런 대답이다. 로저가 자란 환경은 인종차별이 심할 때 였기 때문에 그런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조건 아름답고 교양있는 것이 평안한 대답이 아니라 내 자신과 감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하나님의 대답이 평안한 대답이다.
<목장나눔>
하나님 앞에서 내가 깎지 않은 수염과 갈아입을 옷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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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님: 집에 바로 들어가는 적용이 내가 깎을 수염이다. 어머니를 대하는 것이 여전히 숨이 막혀서 피하기 급급하다. 어머니는 tv를 보시면서 마루에 누워계시거나 술에 취해 계신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적용이라고는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집에 인터넷도 안되서 할게 없기 때문에 일찍 들어가느니 차라리 차에서 시동걸고 DMB를 보며 잠드는 것이 편하다. 날마다 길어지기 때문에 매일 깎아야 하는게 수염인데 참 어렵다. 그리고 집에서 어머니를 직면하며 깨져야하는 것이 의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예의인것 같다. 차라리 예전에는 어머니와 치고 받을지라도 직면할 때인지라 예배가 은혜가 되고 좋았는데... 어머니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내가 먼저 손내미는 작은 순종거리를 찾으려고 기도 해야 겠다.
태원: 학교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취업을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는데 요즘따라 마음이 허하고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취업상담도 받아봤는데 캐릭터 디자인 쪽이 괜찮은 것 같긴 하다. 영적인 부분도 다운된 것은 마찬가지이다. 기도도 소홀해지고...무언가 급하거나 절박한게 없고...
목자님: 시간을 쪼개어 사용해보자. 계획도 세워보고... 사람은 쪼여지는 환경에 필요하다. 술관원장와 요셉이 우리가 된 것은 서로 쪼이는 환경에 잘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될 때까지 훈련받았고 그래서 천거를 받았다. 나랑 똑같은 모습을 체휼해주는 것이 천거이고 요셉이 받은 천거는 총리자리였다. 찌질한 환경 속에서 천거를 받은 것이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그 환경에서 나랑 같은 아픔 가진 술관원장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사가 되고 자존감이 올라간다. 태원이형이 해야 하는 인내는 예배에 최대한 붙어 있고 지체와 교제도 하면서 우리를 잘 누리는 것이다. 내 죄보며 그 훈련 잘 받다보면 요셉처럼 천거될 태원이 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목장식구들과 합의 끝에 태원이형이 해야 할 수염깎는 적용과 옷갈아입는 예의는
1.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적용하며 시간관리 잘하기
2. 수요예배 무조건 사수!
형 화이팅!!
주연: 내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이다. 사무실에서 일마다 간섭하는 직원이 나를 힘들게 하는데도 옳소이다가 잘 안된다. 낮아지기 싫고 통제받기 싫다보니 알겠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 이번에 축의금 명단만 해도 그렇다. 누가 얼마 냈는지를 보면서 은근 시험들더라. 묵상이 되고...그런데 정작 부인에게 이 일을 이야기 하기 싫었다. 내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좋은 면만 보이고 싶다. 자매와 결혼하면서 이런저런 맹세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보니 새벽기도 가는 약속도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착하고 잘보이고 싶은 모습이 앞서는 듯 하다. 고등부만 해도 그렇다. 고등부 아이들 앞에서 잘 망가져야 한다고 하던데 싫은 마음이 있다. 일대일 양육하면서 이렇게 찌질한 모습 인정하기 싫은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솔직하게 공동체 앞에 나서야 한다는 마음을 주시고 있다. 솔직히 그동안 다른 목장에 가서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럭셔리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직면하게 되니까 속시원하다. 정말 자신이 죄인이고 솔직한 죄고백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목자님: 내가 말씀보고 혼자 묵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대일 양육이 유익하다.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치유의 과정인데 양육자와 자신 그 둘이 협력해야 그것이 용이하다. 주연이가 언제부턴가 자신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다. 결혼준비하면서 바쁘고 힘든 과정에도 훈련 잘 받다보니 은혜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고등부 가서는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을 적용해 보자. 경오는 이제 졸라가 입에 붙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졸라 저렴 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편하게 느낀다고 하더라.(졸라~ 헐~ 나댄다~강추강추!!! ㅋㅋㅋ 다만 청년부에서 쓰면 급!!찌질해진다는 ㅠ ㅅ ㅜ)
경오: 원호 재판결과를 듣고는 낙담했다. 주시는 결과에 순종하게 해달라 기도했지만 육적으로 좋은 결과를 바랬었다. 재판 전날 원호와 큐티말씀으로 연락을 했는데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죄를 정결케 해주신다는 말씀을 붙잡자고 했다. 하지만 내 의로는 이미 판사와 재판결과 모두 붙드시고, 집행유예 받고 원호가 예배 붙어 있으면서 훈련받는 것이 죄를 정결케 해주시는 길이라 정해놓고 기도했다. 막상 결과를 들으니 내가 원하는 기도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도 들더라. 하지만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회개가 되었다. 원호의 결과가 잘 나오기를 바랬던 것에 내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장 식구들이 다 안되는 환경에 있다보니 원호부터 길한 해석을 잘 받아서 육적으로 인도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도 육적으로 길한 해석을 받고 감옥을 나오게 될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는 기복이 숨어 있었다.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하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기복을 벗어나지 못하는 죄를 보았다. 원호의 수고로 내 죄를 본만큼 흉한 해석 잘 받아야 겠다.
날마다 깎아야 할 수염: 기복이 아니라 체휼의 기도
옷을 갈아입는 예의: 욕심을 내려놓기
목자님: 사람은 이상을 쫓으며 달려가길 좋아한다. 나를 위해 기도할 때는 그렇게 눈물이 잘 나고 그렇게 체휼이 잘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어려움이 있다. 오늘 말씀에 진정한 우리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체휼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원호의 결과에 대해서 마음으로는 얼마든지 잘 된다는 쪽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결과에 순종하자고 했던 이유는 사랑으로 이야기 한것이 아니라 결과가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게 나와 너 우리의 죄인 것 같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형통한 은혜를 위해 순종하자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그런데 막상 우리 머리에는 좋은 재판 결과만이 떠올랐고 그 반대의 결과에 대해서는 두려워했었다. 지체를 진정 사랑한다면 흉한 해석에도 잘 순종해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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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희: 직장이 길어야 한달 남짓일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렵다. 일시키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이직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 내가 깎아야 하는 수염은 내 할일 다하는 것 같다. 생색나지만 말이다.
내가 갈아입어야 할 의복은 낮은 자존감이다. 너무 남을 의식하다보니 내 삶을 못 살때가 많다.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 정작 회사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는데도 자존감은 여전히 낮다. 인정에 대한 욕심으로 하다보니 자존감이 그대로인지...친구들은 자리도 잡고 장가도 가고 하는데 회사 걱정해야 하고 결혼도 못하는 지금이 창피하다. 어디가서 나 잘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가식적인 내 가치관을 버리고 싶다.
우리 가정만 해도 그렇다. 다 뿔뿔히 헤어져서 살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다. 어머니를 양아버지에게 빼앗겼다는 마음이 있다. 동생은 말레이시아에 유학갔고 누나는 잘 안만난다. 가족애가 없는 가족이 되어 버렸다.
홀어머니 밑에 살 때는 지지고 볶고 살아도 함께라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 이렇게 각자 13년을 떨어져 살다보니 가족이 뭔지도 모르겠다. 명절에도 어머니는 새아버지 쪽 나는 친아버지쪽 친가에 찾아간다. 죄진 사람처럼 이 집안 저 집안 다니는 모습이 있다. 아까 경오가 동생을 칭찬해 본적이 없어서 사랑해주려는 적용을 한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고보니 나도 말레이시아에 가 있는 동생을 칭찬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혼내고 욕하기만 했고...여기서 적응 못하고 간 동생인데도 너는 나 못 가본 유학도 간다면서 원망했었다. 형제인데도 그렇게 체휼이 안되고 전화 한통 안하고 있다. 누나도 유학갔다오고 나만 중간에 끼어서 못 누렸다는 원망이 남아 있다. 어느샌가 가족과 벽이 생겼음을 본다.
목자님: 범희가 참 수고하며 살았다. 열악한 조건에서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니까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성향 갖게 되는 것을 스키마라 한다. 곧 후천적으로 개발된 성품이다. 범희가 나름 잘 살아보려고 했지만 가족간에 벽을 쌓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다 부모님에게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가족보다는 친구나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 된 것이다. 가족을 위해 관심을 갖도록 체휼되도록 기도해보자. 특히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연락하는 적용도 해보자.
<기도제목>
목자님: 수요예배와 목자모임 주일예배 성수하는 환경을 위해서
육적인 건강을 위해서
이범희: 생활 속에서 말씀으로 잘 해석받고 적용하도록
누님 신앙생활과 결혼을 위해서
우리들교회 다니기 위해서 서울에 직장 구해지도록,
(월급이 적어지더라도 예배와 양육받음에 헌신할 수 있는 직장)
손정동: 동생과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송주연: 직장에서 순종하도록
집, 교회에서 솔직한 내가 되도록
2011 계획 잘 세우도록
김태원: 취업준비 잘 하도록
동생이 예수 안에서 잘 깨어지기를
강경오: 생활예배(큐티와 학업)를 위해서
기복과 내의로 하는 기도를 내려놓도록
교만 내려놓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