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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목장보고서 (김지용 00)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열왕기하 23장 21절~27절)본문의 요시야는 전무후무한 회개를 했는데 최고의 평가 다음 첫마디가 그러나 돌이키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으로 나온다. 요시야는 이렇게까지 돌이키셨으나 진노를 왜 돌이키지 아니하셨을까?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도 그대로이다. 남편도, 엄마도, 아내도, 아이도 다 그대로이다. 자녀, 병, 사업도 그대로이다. 돌이켰을 때도 그대로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1. 그래도 예배합니다.(21) 앞에서 우상을 내더 버리라는 명령은 대제사장에게 말하나 유월절 지키는 것은 온 백성에게 명한다. 혼밥하는게 아닌 믿는 사람들끼리 연합하라는 의미이다. 구원은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닌 같이 모여서 먹고 나누는 것이다. 그것을 자꾸 합리화시켜주는 것은 좋지 않다. 산당 예배는 기복신앙인데 산당을 제거해야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다. 유월절을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고 한다. 율법으로 지키라고 하지 않고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하라고 한다. 내 맘대로가 아닌 기록된대로, 내 형편이 아닌 말씀에 나를 맞춰나가는 것이다. 유월절은 애굽의 마지막 재앙날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안을 넘어가신 것은 그들의 행위가 아닌 피를 보신 것이다. 죽음이 지나간 것이 아닌 어린 양이 대신 죽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해서 산 것이 아니다. (22) 하지만 이런 유월절을 잘 지킨 왕이 없었다. (23) 요시야가 산당을 부수러 벧엘까지 갔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종점이 바로 산당을 다 제거하러 갔단 길이 예배 앞에서 끝난 것이다. 여호수아 이후로는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다. 다윗과 솔로몬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 이후에 수백년동안 남유다 북이스라엘, 왕이든 백성이든 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한 이후에야 다들 알아챘다.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들도 예루살렘에 모이는 게 어려워서 정한 대 지킬 수 없어서 날짜도 안지키는 유월절이 되었다. 이번 대에서 마지막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남유다는 망했다. 지켰다고 부강하게 된 것이 아닌 지켰음에도 망했다. 죄로 인해 바벨론에게, 앗수르에게 망했음에도 예레미야같은 선지자들은 탓을 하지 않았다. 구속사적으로 죄 자체를 근원적으로 봐야한다. 내 속의 악을 직면하여 수고하고,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늘 믿는 우리가 구원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한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불세출의 악인인 므낫세도 구원을 받았다. 내가 성전이기에 구속사적으로 조금씩 치료를 해나가는 것이다. 요시야 생전에는 잘지키다가 사후에는 바로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전무후무한 유월절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 기록된 대로 드리는 것은 산당 예배와는 다르다.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거대하게 섬겨야한다.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서, 남북이 하나가 되어 절기를 지키는데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기에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예배를 드리는 태도롤 잡고, 성결한 데에는 항상 끝에 돈이 있다. (7) 요시야가 자기 재산을 떼어서 모범을 보인다. (8) 헌금이 신앙고백이 맞다. 요시야가 먼저 드리니 다들 즐거워하며 드린다. 지도자가 모범을 보여야 백성이 따른다. 돈이 목자가 되면 밑은 제자들과 자녀들도 돈을 우선시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본을 보여야 따라할 수 있다. 기록된대로,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 사업, 자녀 합격, 남편 등을 말하며 드린 예배 말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을까? 있긴 하겠지만 나의 자녀를 괴롭게 한 남의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이다. 특별히 유월절은 하나님이 베푸신 기도는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물려주라는 자리이다. 구원의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어야한다. 어린 양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야한다. tt를 가서도 나눔을 하고 오픈을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럼에도 요시야가 다른 이유는 재앙의 말씀을 듣고도 이것을 행했다. 약속 같지도 않은 약속을 받았음에도 유월절을 지킨다. 내가 원하는 때에 방식대로 바뀌지 않을지라도 행하는 것이다. 그대로라는 말이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도 아프다. 기도했는데도 남편, 사업, 환경이 그대로이다. 내가 뭐하려고 큐티하고 티티가나 회의감이 든다. 이게 우리의 주제가이다. 근데 그대로인게 또 하나 있으니 어린 양의 피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또한 언제나 그대로이시다. 이게 신실하신 주님이시다. 다음 세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한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 종교를 반대한다. 유월절에 이스라엘이 산 것은 어린 양의 피를 보았기 때문이다. 내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보혈은 변하지 않는다.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흘리는 회개의 눈물을 생색내서는 안된다. 그래서 예배를 드려야한다.적용: 오늘은 예배를 좀 쉬자고 할 때는 없는가? 내가 드리는 에배는 기록된대로 입니까 편한대로입니까? 자녀가 왜 교회를 가야하냐고 물으면 나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습니까?2. 그래도 말씀대로 삽니다.(24) 요시야는 또 유월절로 끝나지 않았다. 예배로 회복한 왕은 일상생활 속도 회복시키려고 한다. 할아버지 므낫세가 한 행동을 50년 동안 똑같이 백성들이 하고 있던 것이다. 인간은 눈 앞에서 당장 금송아지가 번쩍번쩍한 것을 보고자 한다. 다들 우상 보고 절하지 듣고 절하지 않는다. 신명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한다. 이것도 못들으면 사람의 말도 못듣는다. 이걸 제거하는 이유는 율법의 말씀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다. 입으로 세운 그 언약, 결심하는 그런 삶이 몸이 되고, 삶이 되어가는 것이다. 큐티하면서 날마다 적용하고 결심하고 결단하는 것이 몸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이다. 큐티해도 듣고 적용하고 삶이 되는 것이다. 요시야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말씀을 들었다. (25) 성경이 왕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평가를 요시야는 받았다. 전무후무한 회개를 한 요시야는 놀라운 점이 있는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을 다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시양의 평가는 (25) 언약을 세울 때 없던 힘까지 다하여 모든 율법을 다했다고 한다. 신명기의 말씀과 달리 힘을 다해 사랑했다고 한 것이다. 요시야는 자기 소유에서 3만, 3천 마리의 짐승을 내놓았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면 돈과 시간, 손과 발이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은 닿지만 힘을 잘 나가지 않는다. 힘은 거짓말을 못한다. 내가 사랑하는대로 내 힘이 나아가게 되어있다. 내 일주일이, 재물이 어디로 나아가는지 봐야한다. 그곳에 내가 온맘다해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요시야가 순종을 어떤 자리에서 했는지 잊으면 안된다. 그대로 힘을 다해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된 것이다. 요시야는 그래도 말씀대로 살았다. 근데 예수 믿어도 구원이 아닌 잘살려고 기도한다. 말씀은 우리를 결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삶으로 데려간다. 사람도 사건도 환경도 그대로여도, 그럼에도 말씀으로 살 수 있어야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인생이다.적용: 내 신앙이 마음과 뜻에서 멈추고 힘까지 가지 못한 자리는 어디입니까? 시간?, 돈? 손과발? 말씀 앞에서 결단해놓고 아직 순종하지 않은것은 무엇입니까? 어디에 깊숙히 숨겨놓았습니까?행동만 하려하지 말고 근원을 살펴야한다. 여자에게 잘보이려고 하는지, 누구에게 잘보이려고 하는지 등 내 죄와 욕망을 살펴야한다. 3. 그래도 하나님이 100% 옳으십니다.(26) 방금 25절에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전무후무한 회개를 했다는 평가를 했음에도 유다에 내리신 그 큰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갑자기 정하신 것이 아니다. 진노가 꺼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다. 하신 말씀 그대로 하신 것이다. 위로의 말씀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경고의 말씀도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이다. (26) 이유를 므낫세로 든다. 문자적으로 읽으니 원인 제공자를 보며 므낫세 때문이라고, 나 때문이 아니라고 말을 한다. 나 때문이 아닌 다른 목원, 팀원, 엄마, 아빠 등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그 말 뒤에 숨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므낫세 떄문이 아닌 므낫세의 꾐을 받고 따라갈 마음이 있던 백성들을 책망한다. 왕이 우상을 치울 순 있어도 마음까지 돌이킬 수는 없다. 편리하고 쉬운 것들을 찾아가던 마음이 있다. 바로 내 마음 속에 있다. 하루아침에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마음을 변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예배를 인도해야하는 것이다. 우상을 내 힘으로 정리 할 수 없다. 요시야같은 사람은 1000번 억울한 짓을 당해도 요시야 탓이다. 그 기도를 하다가 (16) 우리의 범죄 때문이라고, 내 조상의 죄조차 내 죄로 도착을 해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짧기 때문이다. 오늘 큐티 본문에서도 신명기에서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조상과 세우신 것이 아닌 오늘날의 우리와 세우셨다고 말을 한다. 우리 살아있는 우리도 언약 앞에 서있다. 므낫세 때문이라는 말이 여기 앞에 살아있는 내 책임을 없애주지 않는다.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상급이기에 거꾸로 물어야한다. 나는 지금 내 자녀와 가족에게 뭘 물려주고 있는지 물어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듯한 므낫세가 너무나도 좋다. 멋있는 므낫세가 부러우니 세상으로 꾀이는 목장이 되어선 안된다. 좋은 이야기만 하면 안된다는 의미이다. 목장 식구가 상처받을까봐 말하지 않아선 안된다. (27) 마지막 결론이 버리리다이다. 내가 여기에 두리라고 한 성전을 버리겠다고 하신다. 북이스라엘이 그렇게 망했다. 유다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직분이 있다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성전도 직분도 나를 살려주지 못한다. 목사님 아들이 왔다 해서 그것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모든 므낫세에게 꾀어나는 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제거함과 물리친다는 의미가 같은 원어이다. 내 산당을 물리치지 않으면 내가 제거된다는 의미이다. 사건이 그대로라고 해서 하나님이 모르시는게 아니다. 내가 돌이킴에도 사건이 그대로여도 하나님이 옳으심을 인정해야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회개이다. 요시야는 최종심판이 철회된다는 말이 없어도 순종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100% 신뢰가 있기에 한 일이다. 우리가 한 순종을 공로로 내밀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요시야만한 왕이 없다는데 우리가 요시야만큼 회개를 할까? 회개의 눈물이 죄의 삯을 쳐줄 순 없다. 우리의 회개는 1%도 옳은 것이 없다. 유월절 때에도 죽음이 있었다. 어린양이 대신 언약의 죄를 감당하고 죽었다고 한다. 므낫세에게서 물려받은 성질, 습관, 우상이 내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은 (18~19) 어린 양의 피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반복하던 헛된 행실에서 우리를 대속하는 것이다. 죄가 되물림되던 집에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요시야는 돌이켰음에도 진노가 돌이켜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로 돌이켜야한다. 회개가 소용없다는 의미가 아닌 참된 회개는 오직 어린양의 피를 의지한다. 잘난척 하지 않는다. 행위로 계속 정죄하지 않는다. 언약을 결혼 안에서 지켜야하기에 사건이 끝내 그대로여도 주님이 옳으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한다.적용: 회개했는데도 바뀌지 않는 그 상황을 나는 지금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저 사람 때문이라고 말해온 사건에서 나 때문으로 옮겨야할 내 죄는? 내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은 므낫세의 헛된 행실입니까? 아니면 요시야의 회개입니까?
- 참석자ABCDE
- 한주간 어떻게 살았는지A: 별다른 일 없는 똑같은 한주였음. B: 먼큐 다녀와서 너무 좋았음. 실습하면서 별다른 일 없었음.C: 큐페 피드백 다녀옴. 별 일 없었음.D: 사탐봤는데 2등급 맞음. 결과가 좀 나온 것 같아서 뿌듯함. 형 본가 왔다갔는데 다행히 별 일 없이 지나감. E: 알바 잘림. 기사 시험 떨어짐. 세상이 원망스러움. - 기도제목A: 수강신청 다음주에 있는데, 제발 원하는 과목 신청할 수 있도록. B: 실습 잘 마무리할 수록. 교만하지 않게 신교제의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C: 생활이 좀 궁핍해졌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잘 해결할 수 있도록. D: 수능공부 집중할 수 있도록. E: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