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가 다 갔는데 이제서야 올립니다..
말씀: 느헤미야 9장 4절에서부터~
사람은 자기를 모르면 남들에 대해서도 모른다.
자기를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며 이것은 자신의 지으신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만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수있게 된다. 그래서 만약 자기 자신이 고장 났을때 누구를
찾아가야할지 모른다면 고장날 지에 대해서 항상 불안하며 초조해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지으신 분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아는 방법이 바로
자복이라고 말씀에서 말하고 있다.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자신이 누구인가? 자복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중수하는 것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상황에서 성벽을 중수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런 기회를 이용하신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역사하심으로써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뼈저리게 알게 하신다.
사람은 죽을 병에 걸려서야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볼 수 있게되며 자신이
정말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이였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된다. 그 후에 하나님을 빼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진정으로 고백드릴 수 있게 된다.
<나눔>
사람들이 쉽게 자복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동익형 : 내 자신에 대한 교만이 원인, 이번 일에서도 나 자신만
떳떳하면 되니깐.. 이라는 생각으로 부정행위로 간주되었을 때
거기에 대한 대처를 안일하게 하였던 것 같음. 이번일을 통해서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될 것이라고 생각함.
희성형 : 좋은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망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했고 거기에 대해서 쉽게 자복하지 못했음.
과거에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나에 대한 자존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졌음. 그래서 더욱 더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했고 잘하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하였음. 그것들이 우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우상이 아니라고
부인하였음.
동익형 : 사람들이 정말 쉽게 자신의 죄를 자복하지 못하는 그 근원은
컴플렉스라고 생각함. 자신에게 있어 수치스러운 부분들이
쉽게 오픈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씀을 보는데 있어서도 쉽게
적용하기 힘든 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있어 컴플렉스가
많은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됨. 나에게도 있어서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으로
인해서 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들이 많았던것 같음.
정민형 : 내가 나 스스로를 높여보는 교만함이 있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화를 절제하면서 하는 생각들이 내가 잘 났으니깐
봐준다는 식으로 생각을 함. 속으로 생색내기를 하는 것 같음.
동익형 왈>
자존감과 경외감은 일맥상통하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은 자신을 창조하시고 과거에도 지켜주셨고 앞으로도 동일하게 이끌어가실 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감동먹었음..ㅋ)
<기도제목>
희성형: 무너진 자존감 회복하기, 죄인임을 인정하는 삶되기, 배우자
동익형: 이 사건을 감사함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한 같이 감사함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정민형: 새로운 열정을 쏟을 곳.. (다른 비젼들을 조금씩 보여주심) 더 열심히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알아갈 수 있도록
창진 : 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무너진 곳들 자복하는 심령으로 중수할 수 있도록
내 삶에 충실하기.. 경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