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성서도 통독하고 찬양집회도 다니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열심이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땐 순전히 내 열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기복적이고 일방적인 믿음, 그러한 믿음의 끝에 전 결국 2년 전에 교회를 버리고 나왔습니다. 애초에 교회 자체가 문제가 있는 곳이었기도 했었어요. 동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교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문제랄지 모르지만 아무튼, 약 5년 정도의 교회생활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생각도 안 해본 왕따를 교회에서 당하고 매우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여러 결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제 믿음은 뿌리부터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고 그에 때를 같이하여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 가장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자녀들일 것이고, 게다가 부모님의 이혼을 승낙한 것이 자신일 때 그 상처는 매우 깊고 클 것임이다. 당시는 매우 힘든 상황이었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상황은 저로 하여금 부모님의 이혼을 승낙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부터인가 저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분이 이것밖에 안되는가, 내가 이렇게 힘든데, 대체 신이 어디에 있나. 그런 절규가 내 마음 속에 있었고 전 저를 사랑하지 않는 신은 저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교회를 버리고 신앙을 버린 지 약 반년. 부모님의 이혼과 그 밖에 여러 심정적 문제로 학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저는 결국 소위 직업반을 갔습니다. 제가 간 곳은 항공정비사를 양성하는 학교의 고등학교 직업 위탁과정이었는데 우습게도 제 전공은 문학과 심리학. 완전히 다른 과에 솔직히 처음엔 전혀 적응을 못했습니다. 다른 것 보다 아무래도 직업반은 노는 사람만 간다는 학교의 사회적 인식이 더욱 힘든 것이었고 이런 길이 있다 저런 길이 있다 말은 만이 떠드는데 정작 제게는 너무도 먼 길일 뿐, 꿈도 없는 그런 나날을 보내면서 전 더욱 더 하나님과 멀어져 갔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선생님을 한 분 만나게 되고 그 분으로부터 새로운 희망, 새로운 의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정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지만 중요한 문제는 그분이 불교적인 무교라는 사실이었고 그로 인해 저한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등을 돌리기까지 한 교회 사람들에 대한 반발감이 더욱 커졌다는 사실이었죠.
그렇게 교회를 다니지 않은 이후로 항공 학교를 통해 군 부사관에 입대하고 군 근무생활을 하면서 경력과 자금을 쌓은 다음 본래의 계획인 심리학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꿈도 생기고 지옥 같던 여러 관계들이 회복되고 하는 그야말로 사단의 역사가 가득했으니 교회에 다시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상처가 어느 정도 식어 보이지 않게 되고 교회에 대해 아주 조금 우호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에 그 동안 해어져 보지 못했던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어떻게 들었는지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신앙적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내게 다시 교회를 갈 것을 권면했습니다. 아빠가 확실히 변한 모습이었고 어차피 일주일에 한두 번은 봐야 할 테니까 라는 생각으로 딱 한 번만 나간다고 처음 우리들 교회를 왔던 게 한 달 전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목사님 말씀부터가 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정말이지 교회에 계속 앉아있을 만큼의 아주 적은 우호감과 아빠에 대한 사랑으로 첫 예배를 ‘버텼습니다’ 그러나 그 주에 전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고 그 주의 수요일에 잠깐 보러 오라는 아빠 말에 갔다가 수요예배를 나가게 되고 그 이후로 어어 하다가 계속 교회를 나온 것이 결국 이렇게 간증까지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제 믿음은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교회에 대한 상처들이 아주 많이 치유되었고 이전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격 없는 그런 모습에 반하다 시피 하여 우리들 교회를 계속 나오고 또 그러다 보니 말씀이 들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신결혼을 금하라는 말씀을 첫 예배 때 들은 것부터가 사랑의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전의 저는 관계와 기복적인 것에 신앙의 중심을 두고 있었고 그것은 이방의 우상 앞에서 그를 하나님 여호와라 부르는 식의 신앙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서 말씀에 신앙은 나와 예수 그리스도 간의 온전한 결합이라 하셨는데, 인간의 불신결혼을 금지하신 분이 하물며 순결치 못한 신부를 맞을 수는 없는 것이리라. 그렇게 적용하고 보면 사실 큰 사고나 역경 없이 다시금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이리라 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지난 간증때 다른 말들도 한 것 같은데 그 때 제가 써간 거 대로 못하고 그야말로 말 나오는 대로 간증을 했었더랍니다. 그래서 주보에 올릴 글이 없어서 다시 썼습니다........그런데 이번에도 글이 썩 맘에 안드네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