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선 그래프 그리기
참석 : 5/6명
A 집사님
아버지가 주사가 심해 가족을 힘들게 했고 나는 학교 성적도 떨어지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20대 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인정을 받을 때 즈음 아빠가 림프종 암에 걸리셔서 1년간 간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빠로 인해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되었다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아빠는 돌아가셨고 그 후 친구의 전도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요셉의 설교를 들으며 여태 내가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아빠를 힘들게 하고 질서에 순종하지 못한 가해자임이 깨달아져 회개가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신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 후 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재작년에 학교에서 쓰러져 검사를 한 결과 뇌전증 소견을 받았습니다.
1년에 한 번 잠깐의 증세가 나타나는 심하지 않은 경우라 병원에서 따로 약은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아이가 교우 관계에 문제를 일으켜서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양육이 힘드시면 외부 도움을 받으시라는 말씀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라는 뜻으로 들려 병원에 가서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아이는 불안도가 높고 사회성은 낮고, 약간의 ADHD와 틱 증상이 있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작년 11월부터 놀이치료를 하고 있는데 아이는 아이대로 치료를 잘 받고 있어서,
저도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육아에 도움을 받고자 부모 학교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B 집사님
셋째 딸로 태어나 엄마가 식사를 안 하실 정도로 저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가정에서 인정 받고 싶었기에 집안의 마스코트로 자라려 노력했습니다.
전교 1등을 할 때 가장 기뻤지만 아빠의 반대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공무원 시험에 실패도 했는데 갑자기 아빠마저 돌아가시는 사건을 격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별다른 이유 없이 싫어했었는데 연이어 사건이 일어나게 되니 발걸음이 자연스레 교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부부 관계가 악화되어 남편은 이혼하자고 했고,
저는 저대로 아이 낳고 케어 하는 과정에서 몸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힘든 시기에 우리들 교회에 인도되고 나니, 남편을 가해자로 여겼던 것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자상한 엄마인데 한순간 헐크로 변하는 모습과 절제가 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부모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양육에 교만한 모습이 있는 거 같습니다.
C 집사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유교적인 아버지 밑에 자라게 되었습니다.
효녀라는 이름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아버지께 돈도 드리고 나도 돈을 쓰다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빚이 있다는 것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했다가 후에 오픈 했는데 그로 인해 남편과 갈등이 생겼고,
육아 휴직 급여로 빚을 갚아가기도 했습니다.
막내 출산 때 가장 힘들었는데, 그때 기도가 절로 나오며 남편과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아들만 셋 인데 각자 서로 다른 기질이 있어 맞춰주기가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나도 아이들에게 스스로 옳다 말하기에 제 자신을 돌아보려고 부모 학교 신청를 하게 되었습니다.
D 집사님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교회를 떠나시고 돈을 쫓게 되시며 가정 불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학교에서 따돌림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때 즈음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남편 역할을 바라셨는데 받아들이기 힘이 들었습니다
20살 때, 홀로 유학을 가서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되었고 신앙 생활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는데 사실 아이는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임신이 빨리 되었고 아이 육아로 퇴사를 하게 되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해 결혼 했는데 가정에 소홀하니 무시가 되고 미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일이 힘들어져 공황 장애가 오며 부부 관계가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이전에 섬기던 교회 목사님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고 나서,부부가 함께 말씀이 들리니 자연스레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큰 문제가 없지만 나의 불안과 강박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부모님의 돌봄이 부족했던 사춘기 시절을 보낼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배우고 싶어 부모 학교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E 집사님
가정 불화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우울증이 있으셨습니다.
아빠는 힘이 없으셨고 엄마에게 주도권이 있으셨습니다.
저는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엄마에게서 수용과 용납을 받지 못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나의 보호자를 찾고자 방황하며 배우자를 찾다 29살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결혼을 했는데,
순전히 조건을 보고 결혼 했던 것이라 그와는 손을 잡는 스킨십 조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어머니에 의해 얼마 후 그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나를 수용해 주지 않던 식구들이 비난할 거 같아서 너무 힘들었는데,
제일 나를 비난하실 것 같았던 엄마가 오히려 믿음 생활만 잘 해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엄마에게서 난생 처음으로 수용과 용납을 받아본 것이기에 순종의 마음으로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그 후 내 보호자는 하나님이신걸 깨달았고 동반자인 남편을 만나 신결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이 일로 인해 거의 집에 들어 오지 못하였고,계속된 독박육아로 너무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남편으로 보상을 받고 싶었던 것이였습니다.
그러던 중 넷째 아이가 생겼고 레아가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의 사랑대신 자녀라는 후한 선물을 주셨다는 말씀에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이 넷 모두 학교, 어린이집을 가게 되어 약간의 시간이 있게 되었는데,
얼마전 큐티 말씀에 자신의 전재산인 두 렙돈을 드렸다는 과부의 말씀처럼
나에게는 두 렙돈 같은 나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깨달음에 부모 학교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학교는 이번이 세번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