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5년 10월 6일 화요일
참석자 : 김지나 김남희 김지연 유민경 홍승오 황은미
홍승오
어릴적 부모님이 맞벌이 하셔서 항상 부재중이셨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교때까지 줄곧 나혼자 스스로 알아서 해왔고 대학교때까지 운동선수(승마)로 활동했다. 어릴적 온갖 못된짓을 다하고 다녔지만 부모님이 돈으로 다 해결해 주셨다. 언제는 경찰서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는데 늦게온다고 화낸적도 있다. 그러던중 20대 집에 부도가 나서 집을 나와 혼자살았다.
그리고 약물중독(수면제)으로 고생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첫째딸을 낳고 사업이 힘들어지고 약물중독으로 고생하면서
아내가 알수 없는 곳으로 집을 나가버려 약 7개월간 별거를 하게되었다.
아내 이모님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됐고, 목장에서의 처방으로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현재까지 치료중(2년째)이며 약이 끊어졌다.. 그때는 목자님이 정신과에 가보라고 하신 처방을 받고 목자님이 미친놈(?) 같았다.
둘#51760; 아들을 낳고는 내가 밤에 수유하고 같이 끼고 자고 있다. 첫째딸은 별거중이 었어서 이시기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내가 둘째를 키우다 보니 그때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된다.
현재 목장운영중인데 내가 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이상할 정도로 사업을 잘되고, 예전에는 일이 1순위 였는데 지금은 가정이 1순위이고, 일은 3순위정도 된다.
김남희
부모님이 불신결혼하셨다. 아빠가 믿지 않으셨다.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으셨고,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를 때렸고, 나는 저런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나는 모태신앙이고 어릴때 부모님이 사이좋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심하게 자주 다투셨고, 엄마에게 많이 맞아 힘든 시절을 보냈다.
나도 남동생한테 분풀이를 했다.(컴퓨터 못하게)
나는 엄마가 도망갈까봐 불안했다.
엄마가 나를 때릴때는 난 맞으면서 바른소리를 했다.
나중에 목장에서 그래도 건강해서 그때 바른소리라도 한거라고 했다.
고등학교때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그 얘기로 버텼다.
대학교때 선교단체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겠다고 다짐했으나 나의 가정사에 대해 오픈하지는 못했다.
엄마가 CTS 김양재목사님 말씀을 듣고 우리들교회를 알려주셔서 오게되었다.
선교단체에서 남편을 만났어도 싸우게 되고 원망스러웠다.
부부목장에서는 남편고발하기에 바뻤고, 남편은 나와다르게 건강한 집에서 자랐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바라는 믿음의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내 죄가 보였다.
유민경
부모사이가 좋지 않았다. 주제가가 항상 이혼이었다. 20살때 돌아가셨는데 그때 돌아가시니 평화가 왔다고 생각했고 슬프지 않았다.
싸움의 원인은 술과 돈이었다.
아빠는 사랑과 정은 많으시나 표현을 잘 못하셨고, 부모님을 일찍 여의셔서 동생들을 물질로 많이 도우셨고 보증을 서는 일로 엄마와 다투셨다. 항상 무기력하셨고,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무능력으로 엄마는 일중독이셨고 자가 의가 강하셨다. 그리고 나와 오빠에 대한 기대가 크셨다. 나는 그런엄마가 우상이었고, 엄마는 강직하고 아빠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엄마가 원망되었고, 소소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물질로만 키우셨다.
모태신앙인 남편과 결혼했다. 우리집과 시댁의 문화가 너무 달랐다. 시댁은 공무원인 시아버지와 가정주부이신 시어머니로 관심을 보여주시는게 생각보다 부담스럽다. 애를낳고 남편과 많이 싸웠는데 우리들교회 공동체에서 배우며 싸움을 줄이고 있다.
애기는 공동체에서 크고있어서 아직까지 문제는 없다. 내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못받아서 내 자녀에게는 사랑을 많이 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많이 보여주고 체험시켜주고 싶은데 공동체에서는 큐티하는게 최고다라고 처방해주셨다.
김지연
우리들교회에 처음왔다. 부모학교도 시어머님이 신청해 주셨다.
나는 어릴때 부모님이 싸운걸 본적이 없다. 아빠가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셨다. 발렌타인데이때 엄마에게 꽃도 선물하셨다. 잉꼬부부였다. 그런데 중학교때 제주도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가셨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오빠와 나는 철이 없었다. 엄마가 안계서서 그런지 아빠가 공부에 간섭을 하셨다. 아빠는 규칙적인 분이셨다. 나는 어릴때 무용을 했었다.
고등학교때 아빠는 원치 않으셨지만 할머니의 권유로 재혼하셨고 나는 무용을 그만두고 유학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새엄마는 좋으신 분인데 친엄마와는 다르게 일하시는 여성이라 사무적이고 딱딱하셨다. 엄마라기보다는 아빠랑 사시니까 고마워해야할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10년동안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해서 새엄마와 같이 산 기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돌아와서 새엄마와 부딪쳤다.
애를 낳고 친정엄마에게 받을 그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마 새엄마는 아이를 낳아보시지 않아서 그런거 같다.
시댁과 친정에서 반대하셨지만 미국에서 아기를 낳았고, 시어머니가 미국에 오셔서 하나하나 챙겨주셨다. 너무 감사#54636;다. 시어머니가 너무 좋으시다. 엄마의 사랑을 시어머니께 받고 있다.
사실 나는 천주교 였다. 그래서 나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는 그렇게 생각안하신다. 신랑은 교회 안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