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기 4조 1강 “두려움을 넘어 사랑으로” - 이성원 평원님
때 : 2016. 4. 19.(화)
곳 : 교회 4층 비전홀
나눔 참석 (6명): 신효수(조장님), 한일경, 안현정A, 이은숙J, 홍혜진A, 옥성희
나와 내 부모의 관계는 어떤가요?
신효수(카톡 나눔)
- 완벽한 엄마와 우유부단한 아버지이셨다. 아버지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엄마는 완벽하셔서 애착관계 형성이 잘 안 되었다. 6살 때 엄마의 2달간 가출로 트라우마가 있고 #65279;다해 주는 엄마였는데도 칭찬엔 인색하셨다. 엄마한테 안겨보질 못하고 컸다. 대신 할머니와 관계가 좋아서 고등학생 때까지 할머니 쭈쭈를 만지고 잤다.
- 비교적 감정표현을 하는 편이어서 어릴 적에 야단을 맞으면 화가 풀릴 때까지 분풀이를 하곤 했다고 한다.
한일경
- 어릴 때 아버지는 무뚝뚝하셨지만 안아주시고 키우셨는데 우리 집 위기는 초등 고학년 때, 아버지 40대에 한참 사업을 확장하시다가 사업이 기울어진 거였다. 내 기억에 고등학생 때까지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맨날 술 드시고 엄마랑 돈 때문에 부부싸움 하시고, 엄마 목소리가 사자 목소리로 변해서 으르렁거리는 게 사춘기 기억이다.
- 7남매이셨던 아버지와 6남매이셨던 엄마는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에 사셨다. 양가의 조카 네 명이 대학을 가는 등 우리 집을 거쳐 가거나, 옆에 살면서 엄마가 김치를 해주는 등 키우다시피 하셨다. 외식을 해도 8명이 같이 갔다. 사춘기 중요한 시기에 네 가족이 단란하게 식사를 한 기억이 없다. 하나 있는 남동생이 사춘기 겪은 기억도 없다. 그 사실을 식구들이 다 떠난 다음에야 알았다.
- 옛날엔 맏이인 아빠가 마음도 약하셔서 식구들 챙기는 걸 당연시했겠지만 나는 식구들 득글거리고 애들 뛰어다니는 걸 너무 싫어한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자고 가라해도 딱 저녁만 먹고 오는데, 정 없다고 하지만, 아마 거기서 기인한 것 같다. 그래서 중요한 건, 동생이 크는 것도 못 봤다는 점, 사춘기 때도 친구들 따라 어느 새 커보고 나니까 엄마가 있었고, 내 동생도 갑자기 밤에 담 넘어가고 담배 피우고 다니는 걸 엄마가 그 식구들이 다 떠난 다음에 아셨다. 너무 바쁘셨다. 그때 그 식구들이 시대가 달라지니 연락도 안하고 안 챙긴다. 엄마도 뒤돌아보니 그때는 좋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서운한 마음도 있고 자기 자식들 크는 걸 못 보셨다.
안현정A
- 4남매 중 맏딸이다. 엄마가 젊으셔서 친구처럼 잘 지낸다고들 했는데 관계가 불편했는데 이유를 몰랐다. 우리들교회 와서 보니 엄마의 사랑이 사랑이긴 한데, 내가 노리개였구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날 예쁘게 입히고 먹을 걸 챙겨 주셨는데 완벽주의 엄마셨기에 엄마가 불편했다. 엄마는 완벽하게 보살펴 주셨지만, 친정 가면 몸은 편하지만 정신이 피곤했다. 엄마가 다해줘서 컸기에, 습관이 안 되어서 지금도 살림이 너무 어렵다. 지금도 친정 가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엄마는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는데도,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더 편할 정도로 힘들다. 사춘기도 없었고 말썽부리지 않고 자랐다. 좋은 딸, 착한 딸이어야 했다. 아빠가 알콜중독, 외도, 폭력에 항상 가정불화가 있었는데, 난 큰딸이니까 내겐 엄마는 항상 불쌍한 분이셨다. 내가 20살 때 두 분은 이혼하셨다.
- 세 동생들 키우시는 엄마는 늘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셔야 했고, 그런 엄마를 어떻게 내가 싫어할 수 있냐고 생각했다. 내가 아픈 거였다. 돌아보니 난 어릴 때에 소아우울증이었고 강박도 생겼고 불면증도 심했다. 항상 불안하니까 공부가 안 되었던 같다. 그래서 2,3년 전에, 그리고 작년 여름에 엄마랑 대판 싸웠다. “엄마, 나도 힘들었어.”라고 하니 “너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니?” 하셔서, “엄마, ‘아, 그랬구나.’ 이것만 얘기해줘.”라고 울면서 얘기했다. “너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 너 정말 못됐다.“ 이러셨다. 작년엔 다시 엄마도 힘드셨지만 우리도 힘들었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러냐고 ”너 정말 무섭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가 더 무서워!”라고 했다. 우리들교회 안 다니시는 엄마니까, 이 부분에 대해선 포기해야 되는구나 생각한다.
- 지금도 사실 내가 회개가 안되니까 용서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아, 하나님과 화해해야 하는구나.'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면 엄마와의 관계는 저절로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안돼서 아직도 그런 것 같다.
이은숙J
- 조부모님께서 교육을 안 시키셔서 부모님은 각각 중졸과 초등중퇴이셨다. 사춘기 때 부모님이 내 기준에 못 미치니 부모님을 무시했다. 부모님께 함부로 말해도 어른께 그러는 거 아니라고 내게 훈육하지 않으셨다. 내가 믿음직한 맏딸이라고 의지하셨다. 책임의식이 강했다. 늘 부모님은 내가 돌봐드려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느낌이 많다.
- 상담 받으니 내가 성인아이라고 했다. 애어른이었다. 오히려 부모님께 이렇게 하라고, 이게 더 좋다고 제시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해달라고 떼쓰기보다는 속으로 삼켰다. 훈육을 안 받고 자라서 훈육 받거나 야단 맞는 걸 싫어하고, 그게 용납이 잘 안 된다. 내가 다 알아서 이렇게 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서 행동했다.
홍혜진A
- 외동딸로 자랐다. 외동딸이라고 하면 사랑 많이 받고 컸겠다고들 하지만, 부모와 애착이 부족했다. 부모님은 식당을 하셨는데 잘 안되어서 접고 다시 하시곤 하셔서 늘 바쁘시니 날 돌볼 수가 없으셨다. 외할머니가 나를 양육하셨다. 청소년기에 아빠는 7년간 중동에 일하러 가셨다. 그 와중에 엄마는 일하셔야 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하셨겠지만, 엄마-딸 애착관계가 부족했다.
옥성희(카톡 나눔)
- 목사님이신 아버지는 진취적이고 부지런하셔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셨지만 혈기가 많아서, 성장기에 속으로 정죄를 많이 했다. 병약해서 부모님의 편애를 받은 큰 언니는 집안일에 나몰라라 했다. 차별받은 연년생 둘째언니는 불신결혼과 알콜중독인 형부와 이혼, 재결합, 조울증으로 병원 입원 등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받으면서도 온갖 화를 가족에게 다 쏟아내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응어리가 풀렸다.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 아버지의 혈기를 부채질하고 미련하게 당하고만 사는 듯이 보였던 엄마를 무시했다. 혈기 많은 남편을 만나서, 엄마보다 더 미련하게 사는 나 자신을 보니 엄마가 체휼이 되었다. 다섯 딸을 키운 엄마에게 존경하는 마음까지도 생겼지만 여전히 편애만 하는 엄마가 편하지만은 않다. 성장기엔 큰 언니를, 결혼 후엔 아픈 둘째 언니를 편애하고, 늘 나는 뒷전에 밀려난 것 같아서 서운하다. 조울증 언니의 힘듦을 받아주느라 지친 엄마에게 내 힘듦까지 보태고 싶지 않아, 늘 잘 지낸다고 착한 딸 행세를 하고 있다.
내 아이의 어떤 문제가 나를 가장 괴롭히는지요?
신효수(카톡 나눔)
- 자녀는 삼남매(30세 공무원 큰딸, 28세 현대중공업 아들, 19세 상지대 막내딸)이다. 둘째 낳고나서 낙태를 3번인지 4번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해서 회개를 많이 했다. 막내딸은 도저히 병원을 갈 수 없어서 낳은 아이고, 지금은 나의 보석이다. 지각만 안하면 할렐루야입니다.
- 문제는 나도 아이들과 애착형성이 잘 안되었고 특히 막내가 많이 불안해했는데도 광신도처럼 교회에 가서 살았다. 큰딸은 피아노반주를 10년을 해도 믿음이 안 생겨 지금도 방황중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입장에서 체휼이 잘 안 된다. 적용도 억지로 하는 이기적인 엄마이다.
-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나와 다른 막내를 잘 보며 갈 수 있기를 기도해주셔요~~
한일경
- 아이는 남매(초1 딸, 5살 아들)이다. 비교적 괜찮은데, 내가 약간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이 아니다. 계획을 다 짜가지고 해야 하고 집도 깨끗이 정리해놔야 한다.
- 딸이 마음이 약하고 천성이 착하다. 내 눈치를 보면서 하긴 하는데, 내가 소리를 지르진 않지만 내 눈치를 보니까 내가 잘 대처하지 않으면 사춘기 때 터질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 문제가 전혀 안 보이는데 내 생각에 그렇다. 좀 더 지나면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도 있다. 먹을 때도 내 눈치를 보는데 그러지 말라고 해도 사랑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다.
안현정A
- 아이가 셋(초3 딸, 아들, 딸)이다. 둘만 낳으려고 했는데 남편이 말을 안 들으셔서 셋째까지 보게 되었다. 내가 우울증, 무기력이 심한데도 첫째아이를 열심히 키웠다. 교육 관련 책과 방송을 다 찾아보고 했는데 결론은 실패였다.
-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번에 검사를 받아보니 큰딸이 ADD(주의력결핍장애)라고 한다. 예상은 했는데 그게 대개 힘들다. 그 ADD 아이들의 특징이 부모를 화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부부싸움을 하게 만드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정말 보석이다.
- 오늘 아침에도 소리를 막 지르고 와서 아까 막 울었는데... 그게 정말 안 되어서 부모학교에서 그게 좀 됐으면 해서 왔어요~
이은숙J
- 자녀는 고2 딸, 중1 아들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내 식대로 하면 잘 될 것 같아서 잡았는데 애가 힘들어했다. 딸이 중2 때 많이 아팠다. 1년에 4번 입원을 했다. 1달반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1달반 있다가 또 입원하길 거듭했다. 뇌염증을 앓았다. 원인은 의사도 모른다고 했다. 딸에게 강박증이 있다. 부모의 싸움으로 심리적 안정이 안 되었다. 심리적 안정이라는 기초 위에 쌓아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었다.
- 딸이 5학년 말에 목이 붇고 열이 났다. 건대병원에 입원했지만 병명은 모른다고 해서 감기로만 알았다. 크게 아팠던 건 그때였다. 1년 뒤에 아이가 시야가 굴절, 왜곡되어 보인다고 했다. 안과 갔더니 큰 병원 가라고 했다. MRI 찍으니 뇌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치료되고 6개월 뒤에 병원 오랬는데 안 아프니 안 갔는데, 중2 때 잠복하고 있던 염증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면서 강박증이 심해졌다. 뇌를 찍어보면 하얗게 나오는데 이것이 나은 상처의 흔적인지, 웅크리고 있는 염증인지, 의사도 열어보기 전엔 모른다고 한다. 활성화되면 퍼져 보인다.
- 다발성...자가면역질환 부류라고 해서 절망했다. 입원을 반복하고난 그때 아는 권사님이 우리들교회를 소개해주셔서 오게 되었다.
- 딸이 강박증이 심해서 처음엔 정신과로 입원했는데, 낫질 않아서 신경과에서 치료를 하니 강박증이 나아졌다. 그래서 이 관계를 알게 되었다. 뇌염증을 앓으면 강박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6개월마다 신경과에서 검진한 뇌염증은 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매월 강박증으로 정신과 간다.
- 아이가 다음주 시험인데 정리하느라고, 강박증 이기려다 지쳐서 공부를 못한다. 그런데 학원은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속이 터진다. 약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한 사고에 걸리면,그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학원에서 그러지 않으려고 정신을 쏟으니 에너지가 고갈된다. 학원을 쉬라고 해도 못 쉰다고 한다. 지금 안하면 나중에 몰아서 해야 되니 놓지도 못한다고 한다.
- 둘째 아들은 일본 만화에 빠졌다. 나노백? 애니에 빠져 있다. 잔소리하면, 알아서 한다고 한다. 사춘기에 막 들어가서 함부로 못 건드리겠다. 숙제는 겨우 해서 학원 간다.
홍혜진A
- 아이가 늦어서 초1과 7살 연년생 자매이다. 둘째를 편애하는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둘째는 다 지나가게 되고 참아주게 되었다. 내가 힘들었던 게 큰아이에게 많이 갔다. 8살이니 크게 문제는 없지만,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걱정하게 한다. '다리가 아파, 배가 아파,' 어디가 항상 아프다고 했다. 요즘 입학한 후에는 학교 가기 싫다, 재미없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힘든 건 없다.
옥성희(카톡 나눔)
- 초3 외동아들이다. 시험관시술로 42살에 낳은 아이라서 자녀우상이 될 뻔했는데, 아이가 7살 되던 3월에 남편의 폭력을 피해 쉼터로 들어갔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갑작스런 환경변화와 규제에 눌린 아이는 당시엔 순응하는 듯이 보였으나 표현이 줄어들더니 서서히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초1 6월, 판교에 임대아파트로 이사 나온 후 아빠와 3개월 같이 살기도 했지만, 여전한 술 의존과 분노, 경제적 무능력으로 다시 별거한 지 1년 4개월이 되었다. 아이에겐 끔찍한 아빠라서 토요일마다 방문해서 놀아주고 간다. 아이는 아빠와 같이 살길 바라지만, 엄마인 난 아직 상처가 별이 되지 않아 아이의 희망을 들어줄 수 없는 게 괴롭다.
- 아들은 분노 폭발로 음악치료, 놀이치료를 1년 넘게 받았고, 5월초에 종합심리검사를 예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