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 육현주. 송경아A. 서유경. 최현주. 신정아
그래프이야기
육현주
아빠가 10살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그때부터 내 인생이 바닥을 친거 같다. 아파서 울고불고 하며 내 감정을 표현했어야 했는데, 안아픈척 괜찮은척 하며 마음에 메마르고 우울했던 청년기를 보냈다.
남편을 만나고 연애하고, 신결혼하면서 그래프가 상승곡선을 탔다. 결혼하고 나서 시댁과의 갈등, 남편과의 불화로 나는 신결혼 했는데왜 이런가 하며 다시 그래프가 바닥을 향하게 된다. 아이낳고 진짜 내인생의 바닥을 찍었다. 말씀이 들리고 아는 것이 있어도 행동으로 직결이 안되는 나를 보니 너무 힘들었다. 말씀과 공동체에서 나를 직면하며 지금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최형주
초등학교 5학년 까지 뒤에는 산 앞에는 바다가 있는 시골에서 매일매일뛰어다니며 재미있게 지냈던 ,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주사가 심하셔서, 술을 드시면 엄마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폭력을 행하셨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상처는 엄마에 대한 상처가 더 크다. 편애가심한 엄마때문에 어릴적 일기장에는 엄마의 욕과 마음에 분이 항상 담겨있었다.
고등학교때 왕따를 당하였고, 아버지의 사업부도와 어머니와의 잦은 부부싸움을보는 것이 더는 싫어 20살 때 도망치다시피 집을 나와 독립을 하며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런생활중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나의 집보증금 사기로 큰 돈을 잃게 되면서 나의 살곳이 없어져 다시 가족들에게가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남편을 만나 아이낳고는 너무힘들었다. 자유롭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메어있으려니 지옥이었다. 아이를 좀 키우고 장사를 시작하였다. 셰프였던남편과 돈가스 가게를 차렸는데 장사가 매우 잘되었으나, 우울하고 권위적인 남편은 성실하지 못한 태도로장사를 하다 그만두게 되었다. 나 혼자 가정형편을 책임지고 가자니 너무 힘들어 당뇨까지 왔다.
아이아빠의 무기력과 실직으로 내가 버는 것은 입에 풀칠만 할뿐 아이의 뒷바라지를 못해준 것이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아이가 태권도를 잘하여 여러상도 받았었는데, 금전적으로 너무 부족하여밀어주지 못하였다. 2001아울렛에서 밤 11시까지 알바를하고 오면, 아이에게 신경을 써줄수가 없었다. 아이의 우울증이심해져 자퇴하고 오토바이 타고 지금은 자동차 유지비를 안주면 폭발하여 집에 살림을 때려부순다. 나는살고자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래야만 하는지 순간순간 절망이 된다. 내가 남편의 수고로 깨지지 않으니아들의 수고로 내 무릎을 꿇리신 것이 해석이 된다. 그래서 말씀안에서 다시 최선을 다해보고자 오늘도이자리에 있다.
송경아
어릴적 시골에 살았다. 부족지 않은 집안에서 엄마아빠가 교회 봉사도많이 하시고, 주변 이웃들과도 사이가 좋으셔서, 어딜가나나도 예쁨받고 인정받는 아이였다. 어릴적을 생각하면 참 행복하다. 3학년때오빠의 교육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오게되었는데, 아빠는 직장 때문에 지방에 계시면서 기러기가족이 되었다. 그때부터 힘들었던거 같다.
초등학교때 왕따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엄마에게 나의 힘든 것을얘기했는데, 엄마는 짜증난다는 듯..
“그럼 니가 걔를 따돌리면 되잖아~”라고 대꾸하셨다. 그때의 기분을 잊을수 없다. 3학년때나를 왕따시킨 그 아이와 5학년까지 같은반이었다. 그 때를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고 안좋다.
청년때 교제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들교회 와서 불신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헤어지고, 이제는내 스펙을 쌓아야 겠다며 열심히 내 인생을 계획하며 어학연수와 취업에 힘을 다하였다. 대기업사장의 비서로일하다가 6개월만에 같은 회사 다른곳 비서로 내려가는 사건이 오면서 마음이 무너졌었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 너무나 자상하고 잘해주는 남편을 보며 나의 어릴시적을 보상받나보다 하고 행복에 젖어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래프가 다시 바닥을 찍었다. 너무 힘들어 우울증이생겼다. 그래도 우리들 공동체가 있어 말씀안에서 아이 양육하며 건강하게 잘 살아내려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