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말씀인도 (성혜옥)
부모는 한 가정의 리더이다. 아이만 낳으면 그냥 애착이 저절로 되는 줄 알고 잘못 양육을 했지만 누군가 그 범한 죄를 #44704;우쳐 주면 (교회 목자, 리더, 부모학교 강사 등등) 속죄제를 드리는 심정으로 주님께 눈물로 애통하며 회개하면 된다.
손서영 강사님은 자녀이해 강의를 하시면서 먼저 아이 행동에 대한 이해와 부모의 역할, 그리고 아이 연령에 따른 부모의 역할변화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긍정적 관계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경우 강사님은 여러가지 부모의 역할이 있음을 알려주셨는데 (명령자, 도덕주의자, 전지전능자, 심판자, 비판자, 심리학자, 상담자) 그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피해야 할 것이 비판자하고 하셨고 자녀의 상담자로 언제나 아이의 교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신재 강사님은 본인의 삶을 나누시며 나의 삶 곡선을 그리는 법을 알려주시면서 나의 삶에서 가장 기뻣던 일, 그리고 슬펐던 일이 무엇이고 무엇이 나를 살리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의 삶 곡선을 토대로 나의 삶 나누기
이정숙 조장님:
오빠 2, 언니 2, 동생, 나 이렇게 6남매의 5째로 태어나 평범한 유아기를 지났다. 소년기에 괴롭히는 친구 한명이 생각나지만 그런대로 학교 잘 다녔고 직장생활도 밋밋했던 기억이 난다. 남편과의 연애가 좋았고 9남매 장손에게 시잡을 갔다. 시어머니는 남편 정략결혼 시킬 사람을 마음에 두로 있었는데 나와 결혼하니 호된 시집살이를 시키셨다. 두 딸들 양육은 미흡했지만 부부의 정이 좋았던 것이 좋은 영향을 미쳤는가, 그나마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5년전 남편의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64세 나이로 돌아가고, 두달사이에 재산때문에 딸도 이혼 당하고 나와 함께 살게 되었따. 우리들교회 목장을 먼저 오고 그 다음에 부산 떠나라는 마음의 음성으로 우리들 교회 오게 되었다. 아직 아이를 완전히 내려 놓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촛점을 맞추면서 가려고 하니 기도하게 되고 마음이 편해졌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아직도 내 속의 완벽주의 생각들 때문에 부모교육학교 신청하고 교재를 여러번 읽으니 이것을 적용해 봐야겠다하는 생각이 든다.
서윤 집사님:
유아기때는 아빠 때문에 우울했다. 엄마는 아들 하나 데리고 재가를 해 나와 동생 둘을 낳으셨는데 내가 7살 터울 동생을 케어하며 동생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 사업이 나 고2때 망해 친척 목욕탕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거기 일하는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니 가족에게 알리지 못했고 과년한 딸을 그런 곳에서 일하는 것을 알선한 엄마가 미웠고 돌아가실 #46468;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결혼 후 남편은 일중독에 부재중 아빠였으나 나는 우울한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아이에게 집중하면서 즐겁고 기쁘게 양육했다. 큰 아이가 이뻐서 둘째 가졌을 정도이다. 남편도 외로운 사람이고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내 양육태도 이해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냉담했다. 남편의 말을 잘 듣지 않았고 원망을 표현 않다가도 욱하면 비판했다. 내가 에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아들이 또 좋아하니 정서공감을 아들과 나누었다.
둘째가 좋아하는 것은 거의 다 허락했는데 그 결과로 아이의 자존감이 너무 세서 나도 강하게 아이 무릎 꿇리고 욕하며 혼을 냈다. 그러니 아들이 엄마 그러면 천국 못간다고 한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대화가 되지 않아 분수령 회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남편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직면하고 여기서 사랑하면서 잘 붙어가는 적용을 하기로 했다.
이윤희 집사님:
*4살때 밥상과함께 마당으로 던져지고 아빠께 매를 맞기시작으로 화풀이 대상으로 줄곧 맞다가 시골할머니댁에서 할머니사랑을 받고 7살까지 살다가 취학통지서가 나와 서울 엄마아빠집에 오게 되었다.
*초.중1까지 교회에 다녔다.
(항상우울함.외로움 초조함.음식거부.짜증.공포와두려움.대인기피.스트레스.자살충동.아빠를 살인할 생각으로 꽉참)
하나님저를 만나달라고...
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울며 이집에선 도저히 못산다고 기도하다 항상 잠이듬.
중학교 때부터 교회 안나감.
*고등학교3학년때 날괴롭히는 키크고 싸움잘하는 친구를 때려서 이김.
그후 날라리 친구들과 한패가되서 다님.
미용학교친구들과 미용실에 취업후 성격이 마니 밝아짐.
*22살에 좋다는 남자들은 다 뿌리치고 지금의 남편을 2년 따라다니다24살에 결혼.
*신혼초 시어머니 노래방줄에 넘어져 입원후 간병안하고 휴가간 원망을 욕듣다 스트레스성 유산으로 깊은 우울증.
*동갑인 남편은 무능력에 미용실처분한 돈까지 주식으로 날리고 큰아이분유값이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지고 잔소리하는 아내가 싫어 전세금을 다빼서 사업을 시작함.우여곡절끝에 사업이 조금 되려고 할때 직원이 감전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음. 사업장 안전수칙미필로 산재처리를 했지만 회사부담금도커 사업위기.
전도하던 시골 조금한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남(성령받음)모든예배에 출석함.대인기피증사라짐. 담배.술. 세상친구 끊어짐. 이밖에 여러 축복을 경험했지만 말씀없이 봉사만하다 교만해짐.
*교회출석일년후 세째(극심한아토피)를 기업으로 선물받음.
*세아이를 혼자4년 육아함.(충북진천)힘들어서 거의 매일움.
*남편과 같이 살게됨.(안양평촌)사업을 핑계로 끝임없는 일회용 바람.
우리들교회 전도받음.조금나가다
친정엄마심장수술로 친정교회에 출석. 아빠와 화해하는 기회.하나님을 거부하던아빠가 교회등록후 출석.
*우리들교회를 떠나 피부샵을 차려 하나님일을 방해 하며 남편몰래 친정을 도움. 8살 연하남과 사귐.
남편이 알게되 합의 이혼도장찍고 우리들교회 전도한 목자님 부부목장에 3개월 출석후 이혼철회.
들리지않던 말씀이 조금씩 들림.
*목장처방으로 하고있던 화장품다단계에 다이아몬드를 그만 내려놓고 엄마의때(복구전) 아내의때 를 가면서도 인생이해석받고 가니 영적으로는 자유하고 기쁨니다.
세상에선 팔자사나운 호랑띠지만...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수밖에 없으셨고 저에 구원때문임을 해석받고 가고있는 지금이 가장행복합니다. 또한 어떻게 아이들 마음을읽어내고 사랑을 전해야될지 몰라할때 부모학교를 통해 양육방법을 배울수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수미 집사님:
어릴때는 큰딸로 사랑받고 자랐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친정 아빠가 술먹고 폭행도 하고 바람도 피우고 부부싸움하는것 보고 커서 늘 불안했고 열등감으로 살았다
청년기 시절도 대학다닐때 잠깐 행복 했지만 직장생활이 힘들었다
27살때 결혼했는데 아들 낳고 행복했다
35세때 보육교사 일을 시작하면서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었는데 46세 얼마전까지 참고 일하다 보니 우울 불안
공항장애 등 모든 정신병은 다 걸려있었고
경제적으로 힘든 친정을 남편 몰래 도와주면서 숨기느라 불안하며 살았다
지금 46세 9월부터 일을 쉬고 있어서 행복하고 너무 좋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기쁜일은?
2년전 우리들교회와서
목장처방으로 친정도와주면 안된다고 지혜롭게 말씀해주신것과 지금 하기싫었던 일 안하고 쉬는것
★힘든일은?
하기 싫은 보육교사 하며 내돈 벌어서 남편몰래 친정도와주었는데 친정은 끝도없이 빚에 허덕이며 사셨고 더이상 내가 할수없는 상황이 왔을때 정신적인 아픔으로 가슴이 답답해서 죽을뻔 한일
★우리들 교회와서 내가 부모님 도와드린게 잘 한줄 알았지만 분별없이 도와드렸기에 부모님께 가해자였다는것과 남편 속인것을 회개했습니다
황소윤 집사님:
어렸을 때 일로 부재중이신 아빠, 시댁갈등으로 우울한 엄마 밑에서 밋밋하나 감정의 아이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뭔가 불만이 많았고 격리 불안증이 있었는지 항상 꿈에 엄마랑 헤어지는 꿈을 꿨다.
초5학년에 미국 주재원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미국 L.A.에 가서 4년정도 살았다. 동네에서 얼마 안되는 동양인이어서 나와 내 동생들은 힘들게 학교에 적응하면서 다녔다. 인종차별도 당해보았다.
그러면서 가족이나 학교에서 서포트 보다는 비난을 받으면 자라니 자존감이 밑바닥을 쳤고 틱장애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얼굴이 벌개지면서 몸이 떨리는 틱이 왔으나 누구도 그것이 문제라고 말을 해 주지 않고 말못하는 아이로 무시를 당하였다.
고1때 가족과 떨어져 잠시 미국에 더 체류하다 한국에 돌아와 고등학생으로 돌아왔으니 다시 재적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고 내 안의 불안과 미움이 극심했던 것 같다.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 #46468; 친구의 전도로 하나님을 만난다.
대학을 가면서 한사랑 선교회에 들어가면서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면서 대인관계가 좋아졌으나 종종 틱 장애가 나타나 나를 힘들게 했고 그 때에는 병원에서 도움을 받을 생각보다 내 스스로 그것을 가면처럼 가려보려고 무던히 애를 #50043;던 것 같다.
다시 아버지는 호주로 발령이 났고 혼자 한국에서 대학 졸업을 하고 호주로 가서 대학원 진학을 한다. 이때 또 가족은 먼저 한국에 들어가고 나는 남아 동생과 생활하며 학업을 마무리 하고 온다.
하나님은 안다고 했지만 말씀과 기도가 없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교회를 나가지 않고 내 삶을 산 결과 불신취업, 불신 결혼을 하여 성당을 다니던 사람과 결혼을 한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 두고 나니 그동안 가려있던 우울이 올라왔고 둘째와 셋째를 낳으면서 우울이 극을 달할 때쯤 다시 교회를 나갔고 그 교회에서 다시 우리들 교회로 2006년 옮겼다. 우리들 교회의 성령님의 강한 운행하심과 공동체의 위력으로 조금씩 살아났다.
하지만 말씀의 절대순종과 적용이 내 이기심과 교만의 가시기운 때문에 막혀 있으니 큰 아이 재수 시절에 교회를 잠시 떠나있었다. 혼자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작년말에 다시 교회 돌아왔다.
- 제일 좋았떤 시간은 우리들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44704;달아지는 요즘이고-
- 제일 힘든 시간은 아이들 유년기와 사춘기때 우울한 가운데 제대로 못하고 때리고 비난하던 시간들, 남편은 술과 친구들로 회피하며 가정을 돌보지 않고 우울한 내게 모든 것을 던져놓고 혼자 즐겁게 사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시간
- 내가 주님을 회피하고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고 주님과 관계없이 산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지금의 환경이 올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인정이 됩니다. 아직도 내 안의 욕심이 다 처리 되지 않았고 건강도 안 좋아져 우울증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해 마음이 지쳐 있지만 주님의 사랑이 나를 신실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가겠씁니다.
임현아 집사님:
기뻤던일 - 대학합격, 임신, 우리들교회로 옮기게되었을 때, 남편이 목자되었을 때,
힘들었던 일- 피아노 연습, 소통 부재의 결혼생활. 아들의 틱과 ADHD. 조울증.
모태신앙으로 넉넉하진 않아도 평범한 유년기를 보내다가 13세때 교회분 소개로 김양재 목사님께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대학 가서 잊고 지내다가 26세 결혼후 안통하고 화내는 남편과 사는것이 힘들어지자 다시 목사님을 찾아갔고 기적적으로 37세때 우리들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아들이 틱과 ADHD가 있었지만 공동체를 통해 나도 아이들도 회복되고 남편도 초원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47세 올해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갑자기 조증이 왔는데 공동체의 중보와 인도로 가고 있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면서도 감사와 기쁨도 가장 크게 느끼는 것 같다.
*모두의 기도제목: 주님 은혜로 남편들이 아버지교실 나올수 있길 간절히 기도부탁드립니다#4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