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부모학교 9기 6조 나눔 보고서
조장 부경미: 49세. 초등학교 5학년 때 정신질환인 큰오빠의 이혼사건으로 아버지가 힘들어
하셨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사건이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을 거쳐
서울로 상경하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고, 죽고만 싶었을 때 전도 받게 되고 예수를 믿고 내 안에 안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정은 가난했고 고단 했지만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후 믿는 남편과 결혼했지만 신앙관이 틀려 2년간 방황을 하며 무기력과 우울증이 왔다. 우리들교회를 와서 열심만 있어 봉사, 헌 신한 내 문제임을 알고 회개하고 회복되었다. 또 부모학교를 만나 고정관념이
많이 깨지고 있다.
김경령 : 44세. 불교집안으로 딸 넷의 막내로 태어나 부재중인 부모 밑에 곤고하게 컸 다. 그로인해 나의 고정관념과 도덕, 윤리관을 스스로 세워 나를 스스로 정죄하 고 자존감 없이 컸다. 사춘기 고등학교시절 부모님의 치열한 싸움을 보며 집을 빨리 벗어나고자 했고 직장을 구한 그해 도피처로 결혼을 택했다. 그러나 가치관 이 맞지 않고 도박과 게임으로 외롭게 하는 남편이 힘들어 이혼을 종용해서 이 혼을 하였다. 이후 내가 인내하지 못했음을 알았지만 때늦은 후회로 술과 음란으 로 빠지다 주님을 영접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술 주사와 분노조절 장애가 심해 하루가 멀다 하고 폭언으로 수치와 조롱을 해 대 살수도 죽을 수도 없는 고난에 힘들어 하다 우리들교회를 만났다. 산후우울증 과 합해져서 힘들었고 말씀이 들리기까지 오랜 시간을 낭비했다. 내 삶의 결론임 을 인정했지만 살아내기는 더한 희생과 인내가 필요로 했다. 남편이 100% 인정 되기까지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10살인 아들에게 물려줄 건 신앙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부모학교를 통해 배우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
임해용 집사 :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고 삶이 우울하고 화가 많으셨다. 친정엄마는 자살을 하셨다. 관심 받지 못했고 부모님을 미워하며 자존감이 낮았다. 만년 꼴지에 허 약 체질이고 셋째라 눈치만 빨랐다. 취직을 하고 높은 직급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강남에 누나가 셋 있는 아들과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과 출산 시댁 의 이상한 요구에 힘들었다. 회피만 하는 남편이고 커피숍을 하는 남편은 게임중 독이 되었다. 우리들 교회를 와서 2년이 되어가고 작년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 는데 적용 아닌 적용을 하며 가고 있다.
정민영 집사 : 장애가 있는 오빠로 인해 나의 10~20대는 애 어른 노릇을 했다. 결국 오빠가 하늘나라로 가고 2001년 연애결혼을 해서 30대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 진단을 받 았다. 좌절하고 힘들어 하다 우리들교회로 왔다. 일반교회에서는 나눌 수가 없었 다.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우울증이 왔 고 정신과를 다니며 상담 치료받고 점점 아이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고 있다.
이소영 집사 : 오빠가 우선순위인 집에서 열등감이 높은 이이였다. 중학교 때는 열심히 놀았 고 고등학교 때는 무시를 받으며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하며 공황 장애가 왔다. 죽고만 싶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소망이 빨리 죽고만 싶었다. 대학 때 선교단체를 만나 자존감이 올라갔고 유학을 갔다 오고 직장에서 인정을 받으며 좋은 시절을 보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맡겼다. 그러나 아이가 점점 유치원에 부적응을 하고 문제가 드러나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아이를 양 육하며 물건을 던지게 되고 멍청한 새끼라고 욕을 하며 나를 붙잡는 아이라고 원 망하며 이 자식을 죽일까봐 스스로 많이 불안했다. 3년 전 우리들교회를 왔고 남 자 두 아이를 데리고 놀이치료를 주 2회 다니고 있다. 엄청 좋아진 것은 없지만 밑바닥은 치지 않고 있고 다시 재발된 공황장애를 받아들이고 오픈하며 가는데 두렵지는 않다. 아이들을 위해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양경희 집사 : 어린 시절 평균치 삶을 살았고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남편 성격이 보통 사람과 틀려 혈기 분노조절 장애가 심했다. 결국 40대 초반에 남편이 이혼을 요구 했는데 그냥 써 준 것이 접수가 되어버려 이혼이 되고 도망치듯 나올 수밖에 없었 다. 아들 둘을 놓고 나왔다. 전 남편은 3년 전에 죽고 작은 애가 돌아와 같이 살고 있는데 직장생활을 오래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아들이다. 중학교 때부터 떨어져 살았기에 해주는 음식보다 사먹는 음식을 좋아하고 엄마로써 같이 살지만 가족으 로의 의미가 없다. 2009년도 우리들교회를 와서 내가 애들에게 가해자임을 알게 되어 사과하고 잘해주려고 하지만 안 받아 들여지고 있고 나의 진정성이 부족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