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자는 무엇인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현선영: 시골에서 자랐는데 알아서 잘하는 아이여서 부모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랐습니다. 근면 성실하게 농사짓는 부모님들 보면서 성실한 아이로 자랐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라는 말에 짜증이 난다는 아이들의 말이 충격이었는데 부모님은 왜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할까? 라고 생각하며 욕심이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공부하라는 말을 나는 듣지 않아도 공부해야지 하면서 살았습니다. 온순한 양처럼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대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님은 신문을 정독하시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분위기에서 자랐고 자녀를 낳고 보니 의례히 아이는 이래야 된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큰 애가 9살인데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간섭을 안하는 엄마이긴 한데 7살 때부터 일을 하게 되면서 세상 교육을 잘 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1학년이 되어 학교에 가면서 아이에 손을 못쓰게 되었고 아이들 돌봐주시는 이모님이 인도해주셔서 1월에 오게 된 초신자입니다. 출근할 때 이 교회 옆길을 지나가는데 계속 하나님이 내가 아이를 볶을까봐 손을 못쓰게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는 1학년 때 가본 적이 없는데 애는 너무 잘하고 있습니다. 7월부터 육아휴직에 들어왔는데 내 눈에 아이의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하게 시작했던 부분인데 나의 그림자가 아를 숨막히게 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근 강요하고 있었거든요. 출근할 때에는 자기가 너무 관리를 했는데 지금은 엄마가 있다는 느낌에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에서는 이제 좀 2학년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그런 위안을 하기도 합니다.
윤새품: 그림자가 너무 많습니다. 음지의 사람이기에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딸만 셋입니다. 9살, 7살, 3살. 드러나지 않고 나는 힘이 있으니까 눌러버립니다. 둘째가 찡찡거리는 거를 보니 화가 나는데 내가 강요하는 게 있습니다. 첫째는 똑부러지고 둘째는 편하니까 내가 이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식당을 하시면서 식당방에서 살았는데 그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성공해서 살 사람인데 이렇게 어렵게 사는 건 위인전에 올라갈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내 안에는 열등감이 있었고 내 힘으로 컨트롤 해보이려고 하는 것이 있었기에 둘째가 찡찡되면 내가 컨트롤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보여지니 그게 화가 나는 것입니다. 나는 힘든 환경에서 어긋나지 않았어라는 교만함 때문에 상처가 교만함으로 둘째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박이 있기에 한계상황을 깨는 것이 자녀들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원 들어가자마자 결혼하면서 임신해서 공부를 못마치게 되었습니다. 둘째를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관심도 없고요. 나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니까요. 제주도에 가서 둘째가 말을 못 탔는데 왜 말을 안했어? 라고 하니 엄마가 싫어하잖아라고 하더군요. 조바심을 내면서 둘째를 보지만 근원적으로 이해를 못하겠는 건 사실입니다.
김진: 부모님이 저에게 감정적으로 화를 내지 않았기에 자존감이 높습니다. 미술치료를 전공했는데 아이들 눈동자가 흔들리면 위로해줍니다. 동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그림자를 너무 잘 보는데 큰 아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치이고 표현을 못하는데 위로를 못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고난은 신랑인데 폭언과 폭력을 행사합니다.
아
이 앞에서도 때리고 아이들도 때립니다. 믿음 생활하지 않는 친정에도 말을 못했습니다. 신랑을 환자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안됩니다. 신랑은 열등감이 가득합니다. 신학대 나와서 지휘를 하는데 성악을 해서 합창단에 있고 찬양사역을 해야 해서 같이 교회도 못다닙니다. 큰 아이가 5살 때 남편이 내 머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보이니 수치스러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저희 부부는 그냥 동거수준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의 그림자이고 아이들의 그림자라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