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학교 8조 조장: 김정미집사님
김정미집사님
고난은 남편의 알콜중독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픈 가운데 자라서 마음이 아프고 그것을 보다듬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알콜중독이라서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활동적인 성격이라서 잘 지냈으나 6살에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고 7살 때 어머님이 아버지를 피해 도망을 나왔으나 두려움과 재미있었던 상황들로 느껴졌다. 그러나 5학년이 되면서 아버지가 돌아오게 되고 그때부터 지옥 같은 생활이 되었다. 청년생활 우울증이 왔고 열등감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았으나 21살쯤 하나님을 만났다. 신학대를 들어가고 장애인단체에서 일을 했는데 방송을 타게 되고 그 방송을 본 남편이 찾아와 구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알콜중독 이었고 결혼 9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들교회에 오고 1년만에 재결합을 했는데 아직도 남편은 알콜중독증이다. 재결합 후 지금까지 7번까지도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참아왔던 감정을 폭발하면서 둘째가 마음이 많이 아프다. 남편과 재결합 가운데 제가 아이와 떨어져있었는데 그때 애정 결핍이 된 것 같다.
현영란집사님
어릴 때 8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왜 사나 싶었다. 너무 힘들어 보였다. 저는 직업과 대학이 삶의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 사는 삶에 가치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으로, 삶으로 삶의 목적을 찾았는데 대학 때 처음 복음을 들었다. 처음에는 거부했는데 졸업 때까지도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함에 그때서야 복음이 들렸다. 복음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었다.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믿음 하나만 있으면 동역자로 생각하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결혼상이 있었고 저와 많이 달랐다. 소통이 안되었으나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리다가 김양재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고 감사의 시간을 보냈다.
백달님집사
유년시절 부족한 것 없이 잘 지내다가 초등6학년 때 전학을 하면서 인생에서 처음 우울이라는 감정을 극하게 경험했습니다. 학업을 아예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지내다가 중학교 후반에 들어서며 나름 적응이 되어 그럭저럭 지냈고 고등학교 들어서 언니의 전도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점쟁이 할머니와 독실한 불자이셨던 엄마의 핍박에 더더욱 열심히 교회를 나갔고 하나님과의 뜨거웠던 첫사랑의 경험이 또 한번의 행복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시절 세상에 눈을 뜨고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면서도 신결혼은 해야한다는 생각에 3대째 모태신앙인 남편을 만나 선데이크리스찬으로 실 같은 믿음을 유지하며 살던 중 아들을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했고 3살 때 아들이 자폐라는 것을 알게 되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아들이 아프니 부부가 다 예민해져서 작은 일에도 다툼이 잦아졌고 그 와중에 시어머님이 말기암 판정을 받으셨다. 평일에는 야근으로 주말에는 어머님 간병으로 남편을 볼 시간이 없어지니 아들은 매일 아빠를 찾고 울고 아들이 아픈 후로 자존심에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고 혼자만 지내던 저는 이미 몇년간의 우울증이 극에 달해있었기에 남편에게 병원에 또 가려거든 날 죽이고 가라며 남편 앞에서 자살기도를 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고 그런 사실은 모르고 있었지만 갑자기 형님이 우리들교회에 사랑부가 있으니 아들을 위해서라도 와보는게 어떻겠냐는 말에 목장이라는 곳을 먼저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기복신앙만 알고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구속사의 말씀으로 인생이 해석이 되니 숨이 쉬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며 남편과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고 막혔던 관계가 회복이 되면서 다시 살소망이 생겨가는 중입니다.
황은영집사님
어릴적 1남3녀의 둘째로 태어나 빠듯한 가정 환경에 욕심은 많고 하고픈 것을 못한다는 우울감이 많았습니다. 둘째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끈임없이 인정받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저의 인정욕구의 근원임을 지금은 깨닫고 갑니다. 대학을 가고 선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서 감사의 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신결혼에 대한 열망과 연예의 헤어짐으로 깊은 거절감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피해의식과 아이의 육아 스트레스가 많으면서 우리들교회를 알게 되었고 남편과 함께 교회를 다니고 있으나 한언어가 되지 못해 어려움이 있으나 조금씩 적용해 가며 지금은 평안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명의 남자 아이를 키우며 율법적이고 틀을 가지고 아이를 키웠기에 아이가 강박적인 모습들이 보이고 분노가 많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보고자 부모학교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정임집사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고 가난으로 맞벌이를 하셔야 했기에 외할머니댁, 친할머니댁, 이모댁으로 보내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버림 받았다는 피해의식이 생겼고 시골 재래식화장실에 빠져 죽다 살아났습니다. 죽음을 맛보아서인지 모든 것이 허무했고 공허했습니다. 제 이름도 불러주시지 않아 존재감 없이 자랐고 제 생일도 5학년이 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촌들과 비교당해 열등감도 생기고 그래서인지 분노 원망 탓이 많습니다. 결혼도 믿음과 돈을 보며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같이 살다보니 빈들 입니다. 이혼하려했지만 아이가 생겨 죽고만 싶었습니다. 지금은 딸만 둘. 둘 다 틱이 있습니다. 남편은 몸이 아파서 휴직한지 6개월 다 되어갑니다.
서숙이집사님
저는 어릴적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직장을 다니셔서 어릴 적부터 집안일과 동생보기가 저의 일이었다. 놀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모든 걸 양보하고 참고 힘들게 십대를 보냈다. 20대가 되어서 직장 생활을 하는데 너무 허무하고 맘속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스스로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던 것이 지금까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다. 나의 생에 가장 잘한 것이 예수님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