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집사님
아버지의 퇴직후 무능함으로 시골생활했는데 어린 막내삼촌에게 무시당하는 아버지를 보며 불우한 환경속에서 불안과 우울했다. 29세 신결혼해서 외국에 있는 시누에게 자녀들을 유학보냈는데, 둘째가 적응을 못하고 우울해해서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자녀고난으로 우리들교회와서 직장을 내려놓고 남편이 있는 러시아로 갔다가 자녀의 결혼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큰자녀는 불신결혼해서 손주를 낳았는데 손주를 키우고있다. 두째자녀는 직장은 다니나 힘들어 한다. 부모학교 지원 동기는 직장근무하며 자녀양육을 시어머니께 맡겼는데 지금 양육중인 손주를 신앙으로 키우고 싶고 자녀들과도 잘 소통하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B집사님
6남매중 3째로 외로운 어린시절 보냈다. 학교나 직장이나 되는게 없는 삶이였는데 결혼생활로 행복을 꿈꿨다. 믿는 남편을 만나 1년간 행복했고, 목회를 시작한 남편의 면직사건이 와서 어려웠기에 마이너스60 점을 주고싶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시작했고 13년간 운영했는데, 그 시기에 남편의 외도가 찾아와서 면직보다 힘든 사건이어서 마이너스 80점을 주고싶다.
그후 13년지나 다시 목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목회하면서 젊은 청년과 썸이 있어서 싸우다가 우리들교회 목회자세미나에 왔다.
남편이 나를 위해 수고해줬구나! 라고 구속사로 깨달아지면서 아직 문제해결이 안되었고, 치매 시어머니와 살고 있어도 행복지수는 플러스 80 이다.
C집사님
평탄한 어린시절보냈고 기뻤을 때는 재수해서 서울대 들어간 것이다. 결혼한 후 남편이 어떤 여자에게 편지를 받은 사건이 제일 힘들었다.
교사였는데 사직하고 법원에 5급공무원으로 들어간것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들어가서 인간관계의 고난이 찾아와 밑바닥치고, 40대 초반인 10년전 우리들교회 등록했다.
그후 4급 공무원으로 승진이 기쁜사건이다.
작년에 고3딸이 우울증으로 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것이 가장 힘들때이다.
올해도 우울한 딸이 약을 먹고 있다.
D집사님
어렸을 때는 가장 행복한 시절같다. 부모님들도 좋으셨다. 고등학교를 외지로 나가 공부도 인정받았는데, 도시로 나가서 공부하며 공부를 못따라가서 그나마 어려움이 시작됐다.
결혼후 강한 시어머니가 큰 고난이었으나, 인정하고 살았고 남편의 강박적 청결이 힘들었는데 , 그로인해 큰자녀의 방황이 시작되어 밖에 나가면 노느라 안들어오는 아이를 찾으러 다녔고 자녀와 계속 다툼이 되었다.
대학입시 실패한 자녀에게 자질이 있어보이는 음악을 권유했는데 재수를 하던중 포기를 했다.
그상황에 군에 갔다가 고열과 지방간으로 되돌아왔다. 군트라우마가 생겨 현역입대를 몇번 씩 거부하고 있는데 남편의 실직 사건까지 오니, 우리들 교회 먼저온 형님의 소개로 교회에 왔다.
남편은 지금 회사 잘다니고 있지만, 큰아들은 여전히 군대를 거부하며 방황중이다. 우리들교회 와보니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생각은 완하되어 생각의 변화로 행복지수는 올라갔지만, 아직도 내 상황이 납득이 안된다.
E집사님
아버지의 두집살림중 어머니가 후처이셨고, 초1,2학년때 이사문제로 큰집에 몇개월 있었는데 그때가 제일 힘든 성장과정이다.
아버지는 큰집, 작은집을 왕래하셨지만, 친정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부재중 아버지는 크게 못느꼈다. 초5때 사춘기였는데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 라는 생각을 하며 우울해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때, 믿음좋은 친구가 체조하다 다친 허리를 기도받으면 낫는다고 말해줬고 정말로 나았다.
그때 예수님을 만나 행복했다.
원하는 직장을 들어가 행복했고 남편만나서 행복했다.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부모님을 보면서 가정적이고 바람 안피는 남편을 기대했는데, 순박한 미소가 있는 남편을 선택해서 결혼했다.
막상 결혼해보니 남편말로는 모태부터 바람둥이라고 표현할정도로 계속된 바람에도 가정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결혼을 유지했다.
계속된 바람과 가부장적인 남편은 폭력과 폭언도 일삼았다. 끊임없이 남편의 구원위해 기도했는데 결혼 23년쯤 되었을때 더이상 못하겠다고 예배도 안나갔다.
그때 외도 사실을 눈으로 보게하셨는데, 사업하던 남편이 망하는 사건이 오고 외도는 더심했졌다. 위장이혼을 요구한 남편 말을 들어주고 이혼서류를 내고, 남편은 바람피기좋게 지방에 사업장을 계약했다. 남편이 먼저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아프면 함께 울어요 표어 보고 와서 3년만에 목자가 되었다. 부부의 치열함 속에 외면된 아이들의 문제가 이제 드러나서 듣고 회복하려고 왔다.
F집사님
아들우상집안에서 존재감 없는 딸로 사랑받고자 착한딸로 행세하며 인정받으려 애썼다. 나만 사랑 해줄것 같은 남편을 기대하며 결혼했는데 남편의 계속된 외도로 우울한 결혼 생활이었다.돈을벌어 이혼하고자 자녀를 친정에 맡기고 사회생활에 몰입했는데 아들의 소아우울증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들을 고쳐보고자 교회에 가게 되고 믿음생활을 시작했고, 남편을 전도하고 가정예배도 드리며 이제는 되었다 싶을 때 남편의 외도현장을 듣게되었다. 이혼서류를 접수하고 곤고할때 유투브로 김양재목사님말씀 듣다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가정이 중수 되었다.
함께 양육받고 목장나가며 행복했는데, 다시 남편의 외도가 드러나고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를 받는 남편을 섬기느라 정신없이 보냈지만, 공동체의 기도로 통과한 날들이었다. 남편의 예배중수와 맞바꾼 유방암사건이 감사로 받아들일수 있는 것이 기적이다.
엄마의 때를 지키지 못해 아픈 아들이란 것을 이제야 느껴서 지랄총량을 대비해 회개하는 마음으로 부모학교를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