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화 집사님
어린시절을 가난하며 불안하게 보냈다.
어린시절에 갑자기 어머님께서 돌아가신것을 내가 보게 되면서 어린시절이 힘든 시기였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시간이였다. 어머니가 42살에 나를 낳아서 사랑을 많이 받다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가 어릴적부터 자기전에 기도를 해주셨는데 그땐 교회를
다니지 않았었다. 띄엄띄엄 다니다가 20대때는 마음데로 살다가 아버지가 제가 결혼하기 전에
담도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언니랑 다툼도 있고 힘든 가운데 그때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다.
다른교회를 다니다 아는 언니가 우리들교회로 인도해주었다. 그런데 불신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세상적으로는 결혼을 잘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느끼면서 살다가 아기를 42살 늦은 나이에
낳았는데 그때가 가장 기뻤던 때였던것 같고 행복했던것 같다.
그 이후로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신랑이 코인이나 주식같은 곳에 손을 대면서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
근처 교회를 다니다 우리들교회가 생각이 나서 다시 오게 되었고 다시 우리들교회와서 양육받은게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을 해야하는 시기이다.
10년전 청년부에 다니다가 아기 낳고 떠났다가 작년부터 다시 오게 되었다.
이은미 집사님
모태신앙이고 아빠가 목사님이시다. 양쪽 집안이 모두 기독교 집안으로 무난하게 살았고
개척교회 목사님이시다 보니 늘 가난해서 그게 컴플렉스 였다.
학창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인상에 깊은것이 없다. 소아 우울증이 있었던것 같다.
고등학교때까지 기억이 없고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같은것만 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던거 친구들이랑 고기 먹던거 이런 소소한것만 있고 좋거나 나쁘거나 이런것이 없이
쭉 살다가 대학교 들어가서 만난 선배 통해서 첫 회사를 들어갔는데 28살부터 다닌 회사에서 직장고난을 겪었다.
열심히 일하는것만큼 성과가 없었고 양적으론 열심히 하였지만 질적으론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사장님 앞에 데리고
간 선배 앞에 별로 떳떳하지 못하고 미안한입장이였다. 그무렵 대학교 친구 통해서 우리들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양육을 열심히 받진 않았지만 직장고난으로 힘들어지니 큐티 말씀이 내것으로 꿰어지고창세기 홍수사건을 설교로 들었을때였다. 홍수사건이 나한테 너무 필요한 사건이고 직장 고난을 통해서
내 연약과 내 나태와 내 죄가 드러나는게 물이 빠지면서 내 썩은 시체와 쓰레기들이 드러나는 사건이랑
맞물리면서 목사님께서 그때 그런것이 드러나야지 물이 빠지는것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그 말씀에 힘을
얻어서 그 시간을 버틸수 있었고 처음겪는 구체적인 고난이였다.
가난했지만 별일없이 평탄하게 살아왔는데 직장고난 통해서 나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들교회 식으로 보면 주제파악이 되던 시기였다.
청년부에서 목자로 섬기다가 함께 목자로 섬기던 남편을 37살에 만나서 결혼을 했다.
38살에 첫 출산을 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걱정했는데 바로 아이가 생겨서 첫아이를 낳았고 2년 터울로
둘째를 낳았다. 그동안에는 정신이 없어서 부모학교를 들어야겠다 생각을 못했었는데 둘째 아이가 6살정도가 되니
이제 정신이 차려지는것 같다. 일도 하고 일대일 양육도 섬기고 있어서 부담감이 있었는데 육아를 하다보니 내안의 분노도 많고 화도 많고 짜증도 많은
사람이라는것을 알게 되니 겸손히 양육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마음이 들어 신청하게 되었다.
한윤민 집사님
성격이 소심하고 이렇게 나누는것이 쉽지 않다.
어릴적 소심해서 친구도 없어서 외롭게 지냈다. 기억이 잘 안난다. 학창시절기억이 안난다.
중고등학교때도 항상 혼자였던것 같다. 왕따는 아니였지만 항상 우울했다.
교회를 다녀서 하나님께 메달리고 기도를 하였다. 속상하면 하나님께 편지를 썼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메달리고 살았다. 우울했는데 우울감을 해결하진 못했다.
대학교에 가서 다른 동아리에서 어울리며 술도 먹고 그러고 싶었지만 성격상 그것이 힘들었다.
내가 갈곳은 하나님을 믿는 곳인가보다 생각이 들어서 CCC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그곳은 이성교제가 허락되지 않는 곳이라서 만남과 동시에 나오게 되었다.
10년을 연애를 하였다. 즐거웠던 경험이긴 했지만 하나님과 많이 멀어지게 되었고 음란했고 결혼을 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계속 결혼이 되지 않아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 사이 공무원에 합격을 해서 성취할수 있는 경험이였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하게 되었고 자궁에 이상있다는 진단을 받고 임신이
힘들수도 있다고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너무 급해서 소개팅을 하다가 나이도 어리고 조건들이 너무 좋은 사람이
나타나 급하게 결혼을 했고 애기를 못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혼과 동시에 아기를 가졌는데
결혼을 하고 이 결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남자친구와의 낙태사건이 있었고 그때 죄책감이 너무 심해서 생명을 다시는 지우지 않기로 결심을 했기에
이 사람과 못살더라도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가지고 있는 내내 행복하지 않았고
결혼과 동시에 저는 너무 이혼하고 싶었고 나는 알았다. 교회를 다시 가면 이혼을 못하겟다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것을 알았기에 외면하고 싶어서 내 마음데로 이혼을 했다.
제가 그 사람보다 아이를 잘 키울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애써서 키웠다.
그런데 잘 못키우더라. 애 키우는것도 힘들고 잘 살줄 알았는데 많이 우울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것이 힘들었고 부모님의 도움을 바랬지만 실망도 컸다.
정말 꾸역꾸역 부모님이 계신곳으로 이직을 했는데 직장에서도 너무 힘들었다.
참으며 아이때문에 산다는 느낌이였다. 희망이 없고 나한테 맡겨주신 책임감 내가 포기할수 없으니 꾸역꾸역 살았다.
그런데 동생이 많이 아파서 하나님을 찾더라 결국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
이혼을 하고 교회 가는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내 아이는 하나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아이만이라도 교회를
보냈었다. 그곳에서도 내 아이에 선입견을 가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혼한것을 못알리겠더라.
이 교회에 온 이유는 나의 상황을 그대로 솔직히 오픈할수 있다고 생각해서 오게 되었다.
윤선화 집사님
저는 첫째이고요 동생이 두 명이 있다.근데 동생이 한 명이 좀 몸이 약하게 태어났고 한 명은 남자아이라서 엄마에게 차별을 받는 느낌이였다.
7살 때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그때 일기장에 칼로 찔려서 피가 나는 장면을 그렸는데 그거를 엄마가 보시고 심하게 때리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도 담임 선생님한테 뺨을 맞은 적이 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도둑으로 몰려서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엄마가 피멍이 들게 때렸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장면도 한 번 정도 본 적이 있다. 7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어렸을 때 겪었던 것들이 다 너무 고스란히 다 생각이 나고 있어서 요즘에 분노가 많아진 상태고엄마에 대해서도 아이에 대해서도 분노가 생길 때가 있다.남동생을 내가 많이 케어했는데 아이가 남동생이랑 비슷하게 장난이 심하고 산만한 것도 비슷하니 내 아이를 키우는것이 아니라 힘들었던 남동생을 다시 키우는 듯해 너무 화가 날때가 있다.
엄마가 감정적으로 공감해준적도 없고 니가 잘못했다고 비난할때가 많았어서 엄마에 대한 분노가 너무 심해 재작년에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교 때 조용히 살았지만 성악을 전공 하며 주목을 받는 삶이였다. 음악으 로세상을 내가 구원하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저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그런 삶을 보냈던 것 같다.그래서 되게 목표 지향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친구들에게도 왕따를 당한적이 있다.
자존심이 상했고 왕따 했던 친구들이 나중에 사과를 하긴 했어도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심했다.
그러다가 이제 제가 고3 때는 성적이 되게 잘 나오고 그다음에 이제 성적이 되게 잘 나와서 학교에서 이제 되게 주목을 받고 그러던 상황인데 저희 아빠가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다고 지금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이민 가려고 하다가 거기다 돈을 투자를 했는데 그게 사기였다.
아빠가 교회에서 만나신 분한테 사기를 당한 것처럼 돼서 아빠가 경찰서에 가서 그분을 신고를 하고 그다음에 아빠는 배신당한 느낌에 내가 가서 그 새끼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막 이렇게 해서 거의 집안이 공포 분위기인데다가 아빠도 교도소를 가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엄마랑 아빠가 그래도 저한테 나쁘게 대해도 열심히 사셨는데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또 교회를 계속 열심히 다녔다. 대학교를 한 번에 못 가고 대학교를 계속 떨어졌다.
한 네 번 정도 떨어져서 4년 동안 이제 아르바이트하면서 계속 다시 입시 준비하고 그랬는데 그때 엄마가 또 되게 힘들었다고 하시더라. 그때가 좀 하나님 안에서 가족이 하나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그때가 오히려 좀 뭔가 제가 하나님께 더 붙어 있고 그랬던 시간이면서 되게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방 한 칸에서 살았는데 제가 그 후에는 이제
좋은 집에서 살게 돼도 그 방 한 칸에서 살았던 시간이 되게 소중하고 되게 그립고 그렇게 느껴진다.그때는 이제 엄마 아빠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리고 나서 그런 시련이 끝나고 이제 제가 대학교를 이제 좋은 데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 현재는 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돼서 이제 재판을 받고 그래서 분노가 되게 심해졌다.
육아를 하면서 어릴적 부모님께 받지 못했던 부분들이 계속 떠오르면서 정신적으로는 힘들지만 환경적으로는 안정적이다.
여태까지 살아본 것 중에서 제일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도 계속 정신적으로는 너무 힘들다.
김지혜 집사님
저는 6학년 어릴때 수련회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 이후로 고난이 연속으로 시작되었다. 아빠 오빠의 조울증 사건과 엄마 아빠의 사고소식들로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춘기 없이 나까지 엄마에게 힘든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큰자처럼 컸다. 고3때 태국 단기선교를 통해 비전을 그리게 되었고 이후 대학 진학을 작곡으로 전공하였고 이후 다시 태국을 가서 2년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다. 내 인생에 가장 하나님과 친밀하고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였고 가장 행복하고 귀한 시간이였다. 그 이후 다시 교회를 왔는데 교회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불륜 스캔들로 힘들어 하고 있을때 태국 단기선교에서 만난 언니로 인해 신천지를 가게 되었고 감사하게 5개월때 하나님이 꺼내주셔서 나올수 있게 되면서 우리들교회로 인도되었다. 3년정도 청년부 생활을 하였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남편 교회로 가게 되었다. 5년정도 섬기다 두 아이를 낳고 친오빠의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그 사건이 해석이 되지 않아 힘들때 다시 여자목장으로 인도되었다. 여자목장만 다니다가 2019년 남편 아이들과 다시 등록하게 되었다. 사춘기 없던 나의 쓰레기 같은 감정이 두 아이를 낳고 폭발하면서 내가 얼마나 하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구속사의 말씀이 들려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100% 옳으신 하나님이 인정이 된다. 가족이 모두 한말씀으로 가고 있고 아이들 어릴때 공동체로 다시 온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꾸만 내 안에 화가 나오고 아이들에게 이런것들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기에 더 양육 받고자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되었다.
심근화 집사님
교회를 다니진 않지만 우리들교회를 다니는 언니의 인도로 부모학교를 신청해서 듣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면서불안한 유아 시기를 보넸다. 집에만 들어오면 거의 매번 싸우고 엄마랑 아빠랑 몸 싸움을 하고 항상 불안함이잠재 의식 속에 계속 있다.
저도 행복한 기억이 많이 없는 듯 하다가 대학을 가보니까 뭔가 자유로워진 생활 하고 마음대로 뭔가 결정을 할 수 있고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던 그때가 조금 행복했던 것 같고 36살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바로 아기가 생겨서 많이 행복했다.
시부모님이랑 신랑이 너무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생각으로 남아 선호 사상이 있으시다. 지금까지도 삼시 세끼를 다 할 정도로 도시락을 싸줘야 하는 환경이 힘들었다.
작년에 갑자기 엄마가 백신을 잘못 맞으시고 급성 백혈병을 앓으셔가지고 생을 마감하실 줄 알았는데 감사하게 회복중에 계시다. 다른 분들처럼 이렇게 믿음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항상 저희 언니가 저한테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또 이렇게 하면 죽기 전에도 믿어야 된다고 하고 그래서 저도 이렇게 계속 말씀을 듣고 싶은데 한가정에 두가지 종교가 있으면 분란이 일어난다고 하셔서 못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