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 그래프 나눔>
김홍익:
저는 학창시절부터 교우 관계도 좁고 외토리 성향이 좀 있다. 대학교 때 서클 활동으로 교재에 대한 기쁨을 알면서 선후배 관계가 좀 재밌었다. 그 후 결혼할 때까지 20살부터 35살까지 즐거웠다.
대학교 2학년 때 후배인 지금의 아내와 교제해서 결혼했기에 안정감이 있었다. 부모를 떠나 제 가정을 꾸렸다는 거에 대한 기쁨과 첫 아이가 태어난 거에 대한 기쁨이 있었다. 결혼하고 2년 후에 회사에서 지원해서 미국으로 유학 갔는데, 영어나 이런 거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까 공부가 너무 힘들었다. 아내도 직장을 그만두고 가서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까지 와서 힘들어했다.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한인 교회에서 하게 됐다. 다시 복귀를 해 직장생활을 잘하며 나름 승진도 동기들보다 빨랐는데 그게 독이 돼서 갑질 팀장이라는 꼬리표를 처음으로 달고 인사팀에 불려갔다. 블라인드라고 하는 그런 앱에 제 이야기가 올라와 저희 회사 처음으로 최대의 조회 수와 댓글로 지적을 당하고 조리돌림을 당했다. 배신감과 후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처음으로 회사 근처 교회에 수요 예배를 찾게 됐다. 그 상황을 못 이기고 해외 지사를 또 갑작스럽게 지원해서 인도 뉴델리 지사로 2019년에 나갔다.
그 와중에 아버님이 2년 정도 폐암 투병을 하셨는데 해외로 나간지 한 달 만에 아버님이 소천을 하셨다. 인생의 가장 큰 그런 시련이었다. 거기에 코로나가 겹쳐서 인도에서 가족과 관계도 어려웠다. 다행히 코로나가 심할 때 회사에서 들어오라고 그래서 피난을 왔다.
그때 전에 같이 신앙생활 하던 분이 우리들교회에 한 2~3년 전에 정착하신 상태라 제 상황을 알고 목장에 온라인으로 조인을 하게 됐다. 그래서 2021년 9월에 목장에 참여해서 지금 한 1년여 됐다. 그리고 올해 7월에 3년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 교회를 계속 출석하고 있다.
부모학교 교육을 받지만 사실 영적으로 어찌 보면 이제 첫 출발을 하는 마음이 들어 감사하다. 큰아들은 중3, 둘째 딸은 중1입니다. 한국 와서도 아이들의 학업에 대해 짜증과 화를 내서 가정에 불화가 있다. 그래서 부모 학교를 듣게 됐다. 큰아이나 작은 아이와의 어떤 소통이나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렵다. 라는 걸 체감하고 있어서 네 지원하게 되었다.
김양곤:
제가 7살 때 유치원에서 생일 때 장례의 희망이 뭐가 이제 뭐냐 해서 발표할 때 저는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경찰은 어떤 일을 하냐고 해서 제가 경찰관이 교통 정리를 할 때 하는 수신호를 흉내를 냈는데 친구들이 비웃어서 그때부터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사람들이 다 저를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살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무슨 말을 하면은 그걸 잘 알아들었는지 내가 진지하게 한 얘기인지 이런 것들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이제 남들 앞에 서고 얘기를 할 때 굉장히 불안도가 높다. 12살 때 아버지께서 군산 교도소에 수감이 됐는데 아버지께서 교도소에 가신 일보다는 교도소를 가던 날이 좀 상처와 두려움의 기억이 있다. 아버지께서 회식 끝나고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화가 나 집에 와서 칼을 들고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나갔는데 미수에 그쳤다.
교도소에 수감 된 거는 칼을 들고 나간 것 때문이 아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 때문이다. 어쨌든 그 일 때문에 불안도가 높은 내가 더 불안감이 강한 성격이 된 것 같다. 6개월 만에 출소하셨고 직장도 잃고 빚도 많아졌다. 형, 누나는 대학도 가고 하다 보니까 부재중 부모님으로 두 분 다 살기 위해서 애쓰셨다. 그러니 저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술도 많이 마시고 통제 없이 10대, 20대를 보내고 군대 제대하면서 갑자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남자친구가 있는 교회 자매와 음란한 관계를 가졌었는데 환상처럼 하나님의 목소리 같이 선을 넘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무시했다. 그러니 나는 구원받을 길이 끊긴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 힘든 시기였다.
그러다가 형하고 크게 싸우고 화해를 해보고자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당시엔 이미 가족 모두 우리들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보다 훨씬 고난이 많은 분들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인생이 마이너스에서 이제 플러스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또 공동체에서 소개받아서 자매와 신결혼도 하고 제 첫째 아들도 낳으면서 거의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다라는 그런 삶을 좀 살았다. 그러다 둘째를 또 올 7월에 낳았다.
근데 그때와 맞물려서 첫째가 언어라든지 행동이 특이한 점이 생겨서 주변 권유로 소아 정신과를 갔는데 아이가 특정 감각에 집착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하더라.
불빛이라든지 소리라든지 이 구석 모서리 같은 곳에 집착을 하는 일종의 자폐로 발전될 수 있는 성향이 좀 있다라는 소견을 들었다. 당시에 30개월이었는데 너무 어려서 자폐라고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고 놀이 치료 같은 걸 하면서 성향이 없어지는지를 3개월 정도 지켜보자라는 소견을 들었다.
하필이면 그 시기가 둘째 출산과 겹쳐서 저희 부부가 좀 많이 좀 힘들고 둘째에게 많이 관심을 못 준다는 마음에 힘들게 지내고 있고, 또 제가 지금 3개월간 육아휴직 중인데 둘째가 태어나 잘 돌보기 위해서 육아휴직을 사용하겠다라고 했지만, 사실 직장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좀 있어서 직장생활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약간 핑계 삼아서 육아휴직을 쓴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불안이 심해져서 지금은 누구한테 이제 전화를 하거나 좀 얼굴을 대면해서 사람을 대하는 데 불안이 너무 높아져가지고 몸이 막 떨리고 공중에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한다. 목장도 참석을 못하고 그런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잘 기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부모 학교를 신청을 해가지고 어떻게든지 지금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질문) 자녀와의 안정된 애착 관계 형성을 위해서 고쳐야 될 것
김양곤:
놀이 치료를 하면서 배워오는 것들이 있는데 불안하고 제가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런지 자기중심적으로 이제 아이를 대하는 경향이 있다. 애를 차분하게 관찰하고 아이가 뭘 원하는지를 보는 게 아니고 제가 그냥 아이한테 해줘야되는 거라는 것에 집중 많이 해 가지고 애를 이제 오히려 좀 밀어 몰아붙이는 그런 식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병원 다니면서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저처럼 또 불안도가 같이 높아지고 그런 모습을 볼 때 좀 많이 힘든 것 같다.
김홍익:
고쳐야 될 게 두 개 다인데, 굳이 이제 하나가 더 뭐가 메인이냐라고 한다면 부정적 소통 방식이 큰 것 같다. 사실 자녀와의 가장 큰 문제는 질책과 평가를 하려고 해서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푸시하고 조급한 게 가장 큰 것 같다.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카운셀링 같은 거에 대한 경험이 없고 회사에서 해온 것들은 기준을 정해야 되니까 따라는 가는데, 집에서는 그 어떤 감정에 휘둘리니 적절하게 조절하고 제어하고 또는 좀 기다려서 그 순간을 지나가서 이렇게 좀 피드백 하는 게 참 약한 것 같다.
욱하는 것도 많고 그래서 돌아보면 제 부모님과의 애착 관계가 저 역시 불안하고, 회피형의 어머니도 감정적 기복이 좀 많으신 분인데 그런 영향을 좀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긍정적으로 아이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되는데 제 감정에 휘둘리고 아이들의 반응에 휘둘리는 피드백들이 자꾸 나오다 보니까 아이들이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아이들이 청소년 기에 진입하니까 어렵다. 제가 화가 있는데 큰아이가 더 화를 낸다. 왜 화를 내냐고 그 상황에 또 화가 난다. 원래 안 그랬는데 그러다 보니까 좌절감이 오고 힘들고 그런 상황이다.
적용해보고 싶은 부분은 오늘 큐티처럼 기다림에 대한 부분이 와 닿더라. 아이들의 상황을 기다려서 내 말을 먼저 하지 말고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아이들이 도움을 구할 때까지 지켜봐주자 그래서 긍정적인 소통을 못할 바에야 부정적 소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다림을 갖자라고 적용해봐야 되겠다.
김락중:
저도 두 가지 다 해당된다. 의도적으로 둔감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거든요. 고3 딸하고 집사람하고 매일마다 폭식증 때문에 싸우는 것 때문에 그냥 의도적으로 눈 감고 귀 막고 있다. 그리고 집사람과의 불화는 퉁명스러운 말투 때문에 그냥 무대화로 그냥 일관하는 게 나ㅅ지 시ㅍ다. 욱하는 그런 게 저희 집안의 내력인데 아까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부정적 언행의 이유 중에 두 번째 대물림 그 부분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업무의 소통 방식에 있어서 불가능한 이유, 민감 수용이 불가능한 이유는 자기애인 것 같다.
적용은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지금 제가 구직 중이면서 외주 업무를 좀 하고 있는데 어저께 긴급 8건이나 들어왔어요. 지금 하기는 싫은데 적용 차원에서 가장 역할을 좀 해야 될 것 같아가지고 그냥 수임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예찬:
비록 3개월차 아빠지만 향후 어떤 아빠일지 예견해보자면, 저는 선천적으로 예민한 성격탓에 민감성은 바로바로 잘 캐치해줄 것 같고, 부정적 소통방식은 매우 부족합니다.
사실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병리를 유발하는 부모의 소통방식을 모든항목에서 한번이상 들어봤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안정된애착으로 모든항목에서 한번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저는 대화를 단절하고 10대때 큰 방황을 하였고 반항심으로 가득찼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으나 20살때 1년동안 아버지랑 캠핑을 다니면서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제게 대물림된 엄격함과 가부장적 방식, 제 업무가 재무이다보니 Should Be(무조건 정답이 되어야함)가 세다는것을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아내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저도 이번주 설교말씀처럼 야단만 치고 강요로 정답만 이야기했지 증인과 종의 모습은 없었고 있더라도 생색으로 무기삼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부모학교를 통해 일관되고 공감의자세로 자녀를 양육하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