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왕하 20:7~13
고대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솔론에게 자신의 보물을 보여주며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솔론은 “끝을 보기 전에는 아무도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라고 답했고, 그의 끝은 비참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히스기야가 보물을 자랑하며 그의 내면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제목이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입니다.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 우리의 어떤 실제 상태를 드러내시고자 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상처가 나아도 징표를 구합니다.
히스기야는 악한 왕 아하스 아래에서 자랐지만, 기도하는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전심으로 개혁을 이루었고, 아버지의 악함은 오히려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비둘기같이 웅얼거리며 기도했다는 히브리어 ‘하가’ 동사가 등장합니다. 이는 시편 1편의 ‘묵상’과 같은 단어로,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삶으로 반복해 읊조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약한 자가 주님밖에 의지할 곳이 없어 끊임없이 부르짖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시고 이사야를 통해 무화과 반죽을 상처에 놓게 하시고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히스기야는 다시 징표를 구합니다. 이미 말씀으로 응답을 받았는데도 눈에 보이는 확증을 원한 것입니다.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이 징조를 구하라 하셨을 때 거절함으로 불신했고, 히스기야는 응답을 받고도 징표를 구함으로 불신을 드러냅니다. 양상은 달라도 뿌리는 같습니다. 우리도 이미 말씀으로 응답받고도 보이는 증거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징표가 임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징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중요한 것은 징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기 쉽습니다. 아무리 큰 기적을 경험해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결국 인생은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히스기야의 요구에 하나님은 해 그림자를 뒤로 물러가게 하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반복되는 ‘물러가다’는 ‘돌아오다, 돌이키다, 회개하다’라는 뜻의 ‘슈브’입니다. 해 그림자는 물러가는데, 정작 사람의 마음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자기가 납득할 만한 방식, 자기가 원하는 응답을 지정하며 구했습니다. 그는 눈물로 기도하던 자리에서 ‘지정의 자리’로 미끄러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대신 간구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기도의 자리에서 미끄러져 지정의 자리에 앉을 때, 공동체가 나 대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줍니다. 신앙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붙어 있을 때 지켜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징표보다 회개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해가 거꾸로 가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셋째, 예물을 받은 후에도 보물을 자랑합니다.
병에서 회복된 히스기야는 나라가 번창하고 부와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이 사절과 예물을 보내자, 그는 기뻐하며 보물고와 군기고와 나라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히스기야의 눈물이었지만, 히스기야는 세상 앞에 자신의 강함과 가진 것을 보이려 했습니다. 결국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약함과 죄를 드러낼 때 살 수 있지만, 세상은 강함과 소유를 자랑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세상 앞에 자랑한 것은 결국 고통으로 돌아옵니다.
히스기야는 세상 앞에 자신의 보물을 드러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영광을 감추시고 십자가의 약함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낮아지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를 살리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나 소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가’와 ‘슈브’, 즉 묵상과 회개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진 것조차 잃게 됩니다.
한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일상에서 남편은 늘 술에 취해 있었고, 멀쩡한 날이 더 불안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남편은 이유 없이 “너 나가!”라고 했고, 한밤중에 맨발로 쫓겨나 약을 사 모으며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갈 곳이 없어 남편 사무실로 향한 그 밤, 그녀는 절망 속에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남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이 가장 거룩한 순간이었고, 죽음 같은 수치와 억울함 속에서도 오히려 십자가를 지게 하신 주님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쫓겨난 수치와 실패뿐이지만, 구속사적으로 보면 그 자리가 자기 보물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 다시 얼굴을 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이 간증은 십자가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수치를 당하며 죽으셨고, 심장이 터지듯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끝까지 우리를 살립니다.
여러분, 상처가 나아도 징표를 구하고, 징표가 임해도 회개하지 않으며, 은혜를 받아도 보물을 자랑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공동체를 통해 대신 기도하게 하시며 끝내 십자가 앞으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러니 징표보다 회개를 구하고, 보물보다 십자가를 자랑하며, 내 강함보다 주님의 낮아지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소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깨닫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