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아니하였고]
왕하 21:1~9
카페에 가면 여러 소리로 시끄러운데도 신기하게 마주 앉은 친구 이야기는 너무 잘 들립니다. 이것을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하는데, 많은 소리 중에서도 내가 집중하는 소리를 골라 듣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들으며 살고 있고, 그중에서도 크게 듣는 소리가 결국 나를 끌고 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데, 안 들리는 이유는 다른 소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웁니다.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자 가장 오래 통치한 왕입니다. 모든 것을 갖춘 므낫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랐다고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가증한 것은 우리에게도 가증해야 합니다. 동성애와 낙태를 권리로 여기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에 포함함으로 사실상 동성애를 보호하고 인정하는 차별금지법은 죄를 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웁니다. 여기서 ‘다시’의 원어가 돌아섰다는 뜻의 ‘슈브’ 동사인데, 아버지는 산당을 철폐하는 개혁으로 돌이켰는데, 아들은 하나님을 떠나는 타락으로 돌이켰습니다. 똑같이 돌이키는 행위인데, 문제는 목적이고 방향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면 생명이고 하나님을 등지고 돌이키면 죽음입니다.
성경은 악한 아버지 밑에서 선한 왕이, 선한 아버지 밑에서 악한 왕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의 허를 찌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기에 행위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100%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노력할 필요 없이 저절로 산당으로 가는 죄악의 태엽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이 내 안의 므낫세를 죽이는 방법입니다.
둘째,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서 시작된 우상숭배가 결국 성전까지 들어와 산당이 제단이 되고 성전 안에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자기 이름을 두셨지만, 므낫세는 성전에 우상을 세우면서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거스르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가 깨끗하게 한 성전,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고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위험한 자리는 고난의 광야가 아니라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자리, 더 이상 영적 싸움을 안 해도 되는 듯한 편안한 자리입니다.
므낫세의 통제할 수 없는 욕심은 결국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게 하고, 기복을 구합니다. 자녀 문제와 미래는 하나님께 의탁해야 하는데, 앞날을 내 생각과 내 뜻대로 통제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욕심이며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므낫세의 이런 많은 악행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하지만 진노는 하나님이 내 새끼에게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사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이 올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더 심한 악으로 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므낫세의 악행에 대해 ‘내가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라고 하시며 성전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깨지지 않지만, 그 약속을 누리려면 지켜야 할 조건이 ‘모든 명령과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듣는 것인데,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고 오래 기다리시지만, 백성은 결국 ‘듣지 아니하였고’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세상 말을 듣습니다. 백성은 결국 므낫세의 꾐을 듣고 넘어갑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타락한 우리와 너희가 만나면 악은 지극히 정상인 것처럼 자리 잡게 되고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져 악인 줄도 모르고 다 넘어갑니다. 산당을 다시 세우는 악이 성전을 더럽히는 악으로 번지고 그것이 다시 온 백성을 물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말씀이 없어 기갈이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보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안 들립니다. 말씀이 너무 익숙하고, 안다고 생각하니 안 들립니다. 듣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듣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이 남유다는 다윗의 후손으로 언약을 지켜가신다고 하셨습니다.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거의 모든 절에 여호와가 나오며 여덟 번이나 등장합니다.
주님은 악한 므낫세를 위해 더욱 쉬지 않고 숨죽이며 창자가 끊어지는 사랑으로 보고 계십니다. 구원은 듣지 않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죽기까지 들으신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 자녀들과 구원받아야 할 식구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숨죽이고 보고 듣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라도 방향을 하나님께 돌이키면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한 부목자님의 나눔입니다. 3년째 승진이 안 돼서 회사에 대한 분노가 컸는데, 25년도 성과 평가에서 A·B·C 중 B등급을 받아서 더 화가 났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승진이 안 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승진자 명단에 이름이 있었고, 더 놀라운 것은 B등급인데도 연봉이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인상되었다고 합니다. 목장에서 붙어만 있으라고 해서 적용했더니 나의 수준을 아시고 승진과 보상으로 붙여주신 것 같아 '붙회떨감'하며 회개가 많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지 않으면 가증한 산당을 저절로 세우고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으며 더 심한 악의 꾐을 받고 또 꾀게 됩니다. 나 한 사람이 돌이켜 회개할 때 가정과 공동체가 살아나고, 회개의 자리에 하나님이 영원히 자기 이름을 두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방향을 틀기만 늘 기다리는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개하며 구속사로 잘 기다리는 성도님들 되길 축원합니다.